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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86만원 벌든 10조원 배당 받든 세율 똑같다? 배당소득 분리과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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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86만원 벌든 10조원 배당 받든 세율 똑같다? 배당소득 분리과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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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대 "석유화학·철강 산업 구조개편 불가피"…대책 논의
[한정연 기자]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초부자 감세안'이 곧 시행된다. 배당소득을 분리해 과세하고, 최고세율을 10%포인트 내리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고, 국회 심사를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초부자들이 부를 증식시키는 대표적 수단인 배당소득의 세금을 깎아주는 게 정말 밸류업일까. 더스쿠프가 배당소득 분리과세가 밸류업이 아닌 재벌 체제 영속을 위한 빌드업인 이유를 자세히 살펴봤다.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지난 8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진 | 뉴시스]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지난 8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날 국무회의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내용을 담은 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사진 | 뉴시스]


이재명 정부가 8월 26일 국무회의에서 배당소득을 금융소득종합과세에서 분리해 과세하는 방식의 '초부자 감세' 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내용은 조세특례제한법 104조의 27에 신설된다. 정부는 3일까지 개정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곧 해당 법안을 심사해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자산이 3000만 달러(약 420억원) 이상인 사람을 초부자(Ultra high net worth)라고 한다(가브리엘 주크만 등).


그럼 배당소득 분리과세는 왜 초부자 감세일까. 말 그대로 재벌 총수와 같은 초부자에게나 적용하는 배당소득세의 최고세율을 크게 낮춰주는 법이기 때문이다. 기업 주식이라는 자산에서 발생하는 현금배당에 매기는 세금이 배당소득세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배당이나 이자 등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이 넘으면, 이를 금융소득종합과세로 돌려 고율의 세율을 적용했다. 배당을 포함한 한해 소득이 10억원을 초과하면 최고세율 45%(지방소득세 포함 49.5%)를 적용한다.


그런데 배당소득을 분리해 과세하고, 그 최고세율이 35%를 넘지 못하도록 하자는 정부안이 시행되면, 배당소득 등 금융소득이 10억원을 넘어도 35%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 현금배당이 1000억원, 1조원이어도 최고세율은 35%에 불과하다.


35% 세율은 어느 정도의 소득에 적용할까. 월급 733만원인 직장인에게 적용하는 소득세율이 35%다(연소득 8800만원 초과 1억5000만원 이하). 월 실수령액 기준으로 586만원을 버는 사람과 연간 배당소득이 1000억원, 1조원, 10조원인 사람의 소득세율이 35%로 같다면, 초부자 감세라고 부르는 게 어울린다.


배당소득이 연간 100억원이면 대략 14억원, 1조원이면 1400억여원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조건은 무엇일까. 배당하는 기업의 배당 성향이 40% 이상이거나 배당 성향 25% 이상에 직전 3년 평균 대비 5% 이상 배당이 증가하면 감세해 준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재벌을 잡아야 한다고 하면서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하라는 등 슬쩍 금융자본과 부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건 국민에 대한 사기"라고 정의했다. 장 교수는 지난 8월 12일 대안담론을 위한 열린 플랫폼 '소셜코리아'와 인터뷰에서 "대주주들이 나쁜 짓을 하니 요즘 주주 권한 강화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은데, 나는 '그건 그거대로 잡아라'고 말씀 드린다"며 이렇게 말했다.


장 교수가 말했듯 이런 '대국민 사기극'이 당당하게 펼쳐지는 이유는 뭘까. 일단 초부자 감세의 조건부터가 무척 이상하다. 배당 인심이 후한 것은 기업인데, 수십수백억원씩 세금을 덜 내도 되는 사람은 재벌 총수와 같은 대주주다. 배당이 늘어나서 기업 주가가 오르는 게 목적이라면, 배당을 많이 해주면 법인세를 대폭 내려주는 게 더 효율적이다. 법인세를 깎아줘서 실적에 반영되고, 그만큼 더 많이 배당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자료 | 관련 세법][사진 | 뉴시스]

[자료 | 관련 세법][사진 | 뉴시스]


이렇게 할 수 없는 이유는 사실 우리나라 시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업들이 최고경영자(CEO)나 이사회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상법에 '업무지시자'라고 적시된 사람, 이를테면 재벌 총수 말에 따라서 사실상 위법한 경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총수의 뜻을 거스르고, 스스로 배당을 결정할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런 위법성을 제거하는 대신 이 업무지시자가 직접적 이익을 보도록 배당소득의 최고세율을 깎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5대 그룹 소속 상장사들은 2일 현재 우리나라 증시 시가총액의 68.57%를 차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뜻을 이어받아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은 개별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려 한국 주식시장을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그간 부동산에 치중했던 중산층 자산 증식 수단에 증시를 추가하자는 게 대략의 논리다.


그 해법으로 윤석열 정부는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상속세를 깎아주자고 했고, 이재명 정부는 재벌 총수 등 막대한 가치의 회사 주식을 보유한 초부자들의 배당소득을 깎아주자고 주장했다.


상속세 최고세율에 해당하는 30억원 이상 상속자는 2023년 기준 1251명이고, 한 해 배당금의 절반을 가져가는 배당소득 상위 0.1%가 2023년 기준 1만7500여명이다. 상속세는 일회성이고, 배당소득은 되는대로 사실상 매년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당소득의 최고세율을 내려주는 게 좀 더 초부자 친화적인 정책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업가치 밸류업'과 '초부자들의 기업 지배권 빌드업'을 착각하는 것일 수 있다. 밸류업이 기업가치 상승이라는 뜻이 되려면, 몇명의 초부자 세금을 깎아주는 게 아니라 해당 기업의 한국식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지난 몇년간 일본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몰려든 이유는 상속세나 배당소득의 최고세율을 내려주는 '초부자 감세'가 아니라 지배구조 개선에 있었다.

진정한 밸류업은 상법 개정으로 이미 완성됐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개정된 상법 382조의 3 제1항과 제2항에 '이사는 회사뿐만 아니라 주주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사는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규정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법원이 오랜 기간 온갖 창의적인 논리를 개발하면서까지 보호해 온 재벌 총수들과 그 휘하 경영진을 더 이상 보호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 기업의 지배구조를 건전하게 만든다는 말을 쉽게 하면, 총수들이 1~2% 남짓한 지분으로 그 몇십배의 이사회 의결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이는 소액주주 소송 등 여러 판례가 꾸준히 나와야 가능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경제단체장, 기업인들과 떡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을 위해서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추진했다. [사진 | 뉴시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2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경제단체장, 기업인들과 떡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밸류업을 위해서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를 추진했다. [사진 | 뉴시스]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유치산업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몇몇 재벌과 정치권력자가 사실상의 이익공동체를 결성해 나라 경제를 운영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어발 확장을 위한 자본금 마련과 상속세 절세 등으로 이들 재벌 산하 상장사들 주가는 기업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겼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은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라는 얘기다. 여러 계열사가 나눠서 총수 지분을 극대화한 결과, 우리나라 재벌 그룹 대부분은 총수만 가진 소수 지분이 핵심이어서 인수·합병(M&A)조차 불가능하다. 이들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한 사실상 영속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위법하고 기괴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고, 적당히 초부자 감세나 해줘도 주가는 단기간 쉽게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주가는 주가 조작범들 몇명이 작당해도 적발되기 전까지는 가파르게 오른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고양이가 바닥에 부닥쳐 잠시 튀어 올랐다가 죽는 것처럼 큰폭의 하락장 중에도 몇번씩 오르는 게 주가다(데드 캣 바운스). 이는 엔진에 총알을 맞아 격추된 전투기 생각은 안 하고, 귀환한 비행기들 동체에 엔진 부위만 빼고 총알 자국이 많았다는 데 의미를 부여해 엉뚱한 부분에 철판을 덧대는 격이라는 '생존자 편향'과 다를 바 없다.


논리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이 너무 많다. 초부자 감세를 통한 반짝 주가 상승은 '밸류업'이 아니다. 초부자들의 대기업집단 지배권을 영속시키려는 '빌드업'에 불과하다.


이제 국회 통과만 남은 배당소득 분리과세의 달콤한 열매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당연히 초부자들이다. 배당소득만 따로 놓고 보면, 중산층의 건전한 자산 축적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초부자가 배당을 더 받으려고 주가 상승을 허락해 주면, 일반 주주들도 주가 상승의 혜택을 본다'는 것인데, 이 효과는 배당보다는 주식 매매 차익에 있다. 2018~2022년 배당소득이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 국민의 30%인 1723만명이고, 이들 30% 중에서도 상위 10%가 전체 배당금의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 등). 상위 0.1%의 1인당 평균 배당금은 2020년에는 12억5900만원, 2022년에도 8억3200만원에 달했다.

초부자들의 권력을 영속시키고, 그 부를 더욱더 키워주는 대가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비교적 공평했던 누진적인 과세 체제의 종말, 그리고 부자일수록 세율이 줄어드는 역진적인 과세 체제의 시작이다. 불평등은 심화할 것이고, 민주주의의 최소 조건인 기회의 평등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초부자의 배당소득 최고세율을 10%포인트 내려주는 것만으로 만족 못 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마치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을 주장한 사람들'이라는 리스트라도 존재하는 듯,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오직 최고세율만 내리는 내용의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상속세의 최고세율을 내리자는 법안들도 이미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자료 | 국세청][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자료 | 국세청][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국내와 달리 영국 등에서는 한국이 역진적 자본세 체제로 돌아선 것을 아쉬워할 수도 있다. 지난해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은 학술 블로그에 '여당(노동당)은 상속세 개혁을 위해서 해외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과 노르웨이의 우수한 상속세 제도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LSE는 "한국은 영국 상속세 개편을 위한 필수적인 연구 대상"이라며 "한국의 접근법은 혁신적이어서 특별히 흥미롭다" 극찬했다. 상속 재산이 많아질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적인 과세 체제를 공정하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조차 초부자들이 만드는 불평등한 세상을 견제하기 위해서 미실현 지분 가치의 상승에도 과세하자는 움직임이 강하게 있었다. 2021년 6월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가 미국 국세청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기사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워런 버핏, 제프 베이조스, 일론 머스크 등 미국 최상위 부자 25명의 자산은 2014~2018년 4010억 달러(약 557조원) 증가했다. 이들의 실제 세율은 증가한 자산 가치를 고려하면 3.4%에 불과했다. 워런 버핏은 이 기간 소득세 실효세율이 19%였지만, 지분 상승 가치를 고려하면 0.10%에 불과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경우 0.98%였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증시가 밸류업 바람으로 상승세를 띠면서 국내 50대 재벌 그룹 총수 일가의 자산가치는 무려 33조원이나 늘어났다(리더스인덱스). 이들의 총자산은 144조4857억 원으로 연초보다 29.5%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주식의 미실현 이익에 과세하는 것을 고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이 소유한 자산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배당소득의 세금조차 깎아주게 됐다. 배당소득이 100억원이든 1000억원이든 상관없이 초부자들은 이제 월 실수령액이 500만원대인 직장인에게 적용하는 3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빌드업이 마침내 골로 연결된 셈이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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