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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수십회 공연마다 만원…농악의 미래 밝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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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수십회 공연마다 만원…농악의 미래 밝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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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훈 고창농악보존회 4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본인 제공

이명훈 고창농악보존회 4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 본인 제공


“제가 선생님들을 처음 만났을 땐 젊은 사람이 저 혼자였다면, 지금은 젊은 사람이 많잖아요. 미래는 밝다고 생각해요. 이제 다음 세대가 고창농악을 하면서 자부심도 갖고 활동도 하리라고 봐요.”



이명훈(57) 고창농악보존회 고문은 고창농악의 미래를 설명해달라는 이야기에 흥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고창농악보존회가 올해로 창립 40돌을 맞았다. 보존회는 1985년 고창문화원에서 조직한 ‘고창농악대’를 이어받아 1998년 창립한 이후 고창 지역의 농악을 복원하고 전승하며 무형유산 보존과 확산에 앞장서 왔다. 전북 고창과 전남 영광 지역을 아우르는 ‘영무장농악’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는 고창농악은 2000년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영무장농악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고창농악과 영광우도농악으로 분화되었다고 한다.



고창농악이 이어져 올 수 있었던 데는 이 고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90년대 초부터 고창농악을 배우고 익히며 보존회를 다지고 고창농악 전문교육기관인 고창농악전수관을 운영했다.



지난 5월 출범한 4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명훈 고문과 지난달 29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전북 고창이 고향이지만, 고향에서 사는 건 생각해본 적 없던 꿈많았던 20대 이명훈은 농악을 만난 후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카세트테이프로 명창의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지만, 우리 음악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1989년 서울예대 민요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노동자 문화예술운동연합 풍물분과에서 활동하며 본격적인 굿쟁이(굿을 하거나 농악을 하는 사람)로의 길에 들어섰다. 농악을 배우며 호남 좌우도 농악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어김없이 앞세워지는 고창농악의 면모가 궁금했단다.



“선배들과 공부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농악을 전수하였는데 자꾸 고창농악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무작정 고창문화원 이기화 원장님께 여쭤봤죠. 그렇게 고창농악 상쇠 명인인 황규언 선생님을 소개받고 찾아간 게 시작이었어요.” 이 위원장이 고창농악과 연을 맺은 게 1991년이니, 햇수로 35년이다.



그는 “저만 배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당시 인연을 맺었던 연세대 풍물패 친구들과 함께 배우러 가자고 해 1993년부터 대학생들을 데리고 황 선생님 마을에 찾아가 전수를 시작했다”면서 “이후에는 내가 여기에 있어야 후배들도 일할 수 있겠구나 싶어 고창에 정착했다”고 했다.





20대 때 서울에서 문화운동 하다
귀향해 보존회 만들고 역사 기록
올해 고창농악 40년 기념사업 주도
명인 기념비 세우고 11월 기념공연





“93년 14명으로 시작한 전수교육
지금은 해마다 수천명씩 참여”





그렇게 고창 농악을 배우러 온 20대 젊은 여학생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고, 그 지난한 세월 고창농악은 그들의 힘으로 기록되고 전수됐다. “선생님들의 몸짓과 가락에 반해 따라다녔던 건데, 그때는 젊은 사람이 고창에 없었어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이것도 사라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1998년부터 고창농악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할아버지들을 찾아다니며 구술을 기록하는 대장정이었다. 10년 동안 지속한 작업은 2009년 10월 ‘고창농악’과 ‘고창의 마을굿’, ‘고창농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삶과 예술세계’ 등 책 3권에 담아냈다. 틈틈이 사진과 영상, 글로 고창농악을 기록하고 정리했다.



고창농악보존회가 고창 청보리밭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길놀이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 고창군 제공

고창농악보존회가 고창 청보리밭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길놀이로 즐거움을 주고 있다. 고창군 제공


그래서일까. 현재 고창농악전수관을 찾는 이는 한해 4천명에 이르고, 전수 교육은 온라인 예매가 열리면 몇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1993년 14명으로 시작한 고창농악 전수 교육은 지금은 매년 수천명이 참여하는 규모로 성장했고, 전국 각지에서 농악을 배우는 인재들이 고창을 거쳐 가고 있다.



“대학생은 스무살이 돼 고창에 농악을 배우러 오는 거잖아요. 여기서 6박7일을 먹고 자고, 배우는 건데, 그러면 고창을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실제 고창군 성송면에 있는 고창농악전수관은 교육, 공연, 축제, 연구의 거점으로 ‘사시사철 굿피는 고창’과 ‘전통예술학교’, ‘인문학 콘서트’, ‘꿈피는 문화뜰’ 등 20여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주말 동안 고창에 머물며 악기를 배우고 지역문화를 체험하는 ‘굿 스테이’ 프로그램도 호응을 얻고 있다.



전수관에서 진행하는 교육과 공연을 말할 때 그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렸다. “저희가 한해 60번에서 80번 공연해요. 이렇게 많이 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런데 공연 때마다 관객이 항상 많아요. 사람들이 놀라죠. 어쩜 이렇게 관객들 반응도 좋고 함께 하느냐고요.”



고마웠던 이들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는 “고창군도 많이 도와줬어요. 저희가 어떻게 전수관을 짓고 고창에서 살 수 있었겠어요. 고창농악을 응원하는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고창농악보존회 4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8월28일 상쇠 박성근, 설장구 김만식, 수법고 이모질 선생 기념비 제막식을 진행했다. 추진위 제공

고창농악보존회 4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8월28일 상쇠 박성근, 설장구 김만식, 수법고 이모질 선생 기념비 제막식을 진행했다. 추진위 제공


추진위원회는 올해 40주년 기념행사를 11월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8월28일에는 상쇠 박성근, 설장구 김만식, 수법고 이모질 선생 기념비 제막식을 했다. 오는 11월21일에는 고창문화의전당에서 40주년 기념공연 ‘풍무’를 연다. 고창농악보존회 40년사도 편찬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의 바람은 지금껏 이어져 온 ‘굿 문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농악, 굿이라는 게 옛날에는 마을에서 흔하게 했던 거잖아요. ‘굿 문화’가 계속해서 이어지면 좋겠어요. 미래는 밝아요. 저희 세대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재현했다면, 다음 세대는 우리가 마련한 것을 토대로 다양한 모습으로 즐기고 활성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천경석 기자 1000pr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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