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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도 못 씻어" 강릉 관광객, 남해 갈 결심…"손님 떠난다" 식당 분통

머니투데이 강릉(강원)=박상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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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도 못 씻어" 강릉 관광객, 남해 갈 결심…"손님 떠난다" 식당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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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가뭄 직격탄 맞은 강릉 관광·상권

2일 오후 강릉 경포해수욕장 인근 수영장은 운영을 중단했다./사진=박상혁 기자.

2일 오후 강릉 경포해수욕장 인근 수영장은 운영을 중단했다./사진=박상혁 기자.



"발에 묻은 모래를 씻으려고 했는데 세척장 수도꼭지까지 잠겼네요."

2일 강원 강릉 경포해변에서 만난 관광객 서모씨(50)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름휴가로 강릉을 찾은 서씨를 당혹스럽게 한 건 세척장 수도꼭지만이 아니었다.

서씨가 잡은 경포해변 인근 숙소는 이날부터 사우나 이용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그는 "모처럼 휴가를 내서 바다도 보고 사우나를 하며 피로를 풀려고 했는데 당황스러웠다"며 "샤워도 마음 놓고 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에는 이런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될 남해로 가야겠다"고 했다.


호텔 수영장·사우나 운영 중단… 물과 함께 줄어든 식당 손님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강릉 주민과 관광객들의 불만이 폭주한다. 특히 관광 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지역상권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날부터 스카이베이호텔과 세인트존스호텔은 수영장과 사우나 운영을 중단했다. 신라모노그램은 지난달 31일부터 운영 중단에 들어갔다. 현재 강릉 지역 대부분 호텔과 리조트가 수영장과 사우나 운영을 멈췄다. 한 호텔 관계자는 "물 부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기자가 만난 한 호텔 숙박객들은 수영복을 입고 튜브를 들고 수영장 입구까지 왔다가 안내문을 확인한 뒤 발길을 돌렸다. 관광객 김나영씨(20대)는 "어제까지만 해도 잘 이용했는데 오늘 갑자기 시설을 폐쇄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2일 정오쯤 강릉의 한 초당순두부집 모습. 판매용 순두부를 관리하기 위해 물을 틀어놨다./사진=박상혁 기자.

2일 정오쯤 강릉의 한 초당순두부집 모습. 판매용 순두부를 관리하기 위해 물을 틀어놨다./사진=박상혁 기자.



음식점주들도 물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장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유현동씨(63)는 "국물을 내려면 물이 필수인데, 예전처럼 넉넉히 쓰기 어렵다. 설거지도 몰아서 하고 영업시간도 1시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손님 발길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순두붓집 점주 A씨(60대)는 "가게 특성상 물 사용량이 많아 불안하다. 저수율이 10% 아래로 떨어진다면 급수도 제한될 수 있어 휴업까지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는 예견된 문제였다. 올림픽을 계기로 호텔과 아파트가 늘면서 물 수요가 커졌지만 대비는 없었다"며 "그동안 비가 와서 가뭄 위기를 운 좋게 넘겼지만 이번엔 다르다. 손님 발길이 더 줄까 걱정된다. 빨리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횟집과 카페 등 물 사용량이 많은 가게 상인들도 불안감을 토로했다.


오봉저수지 저수율 10% 붕괴 우려

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의 모습. 물로 가득차야 할 이곳은 바닥을 드러냈다. /사진=박상혁 기자.

2일 오전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의 모습. 물로 가득차야 할 이곳은 바닥을 드러냈다. /사진=박상혁 기자.



강릉 생활용수의 87%를 담당하는 오봉저수지는 저수율 10%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이날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전날보다 0.3%p(포인트) 떨어진 14.2%를 기록했다. 강릉시는 저수율이 10% 아래로 내려가면 시간제·격일제 급수를 시행하고, 강릉관광개발공사가 운영 중인 숙박시설 전면 중단에 들어간다.

이날 오전 기자가 찾은 오봉저수지는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메마른 상태였다. 물이 빠진 자리가 잡초로 뒤덮여 저수지였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저수지 아래 쪽에서 트럭이 오가며 평탄화 작업 중이었고, 군인들이 호스를 통해 물을 흘려보내 저수지를 채우고 있었다.


물 부족 예상됐는데 대비 안 해… "연곡천 지하댐 건설 서둘러야"

전문가들은 강릉 물 부족 사태를 인재라고 지적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 이후 관광객이 늘어나 물 부족이 예상됐음에도 사전 대비가 부족했다는 비판이다. 속초처럼 지하댐을 건설하거나 추가 수원 확보 등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실제로 강릉과 달리 같은 동해안 관공도시인 속초에서는 워터밤 축제가 열렸다. 지난달 23일 속초 한화리조트 설악 쏘라노에서 '워터밤 속초'가 진행됐다. 1만5000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다. 속초는 쌍천 지하댐 건설을 통해 충분한 수량을 확보했다. 속초시에 따르면 1998년 제1지하댐을, 2021년 12월 제2지하댐을 건설했다. 총 63만톤(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속초는 강릉의 절반 수준 인구에 관광객도 적지만, 쌍천에 지하댐을 설치해 60t 이상을 저장하며 고질적인 물 부족을 극복했다"며 "반면 강릉은 가뭄 때마다 비가 내려 댐에 물이 차는 행운 덕분에 위기를 넘겨왔다. 기후 위기로 더 더워지는 지금, 대비가 필요한 곳에서 안일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이어 "궁극적인 해결책은 연곡천 지하댐 건설을 서둘러, 바다로 흘러가는 물까지 생활용수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강원 평창 도암댐 물을 공급받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한때 오염 물질 유입 논란이 있었지만, 수질 개선을 통해 안전하다는 인식을 꾸준히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는 "만약 물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론 강릉 관광객도 끊기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도암댐 물에 대해선 강릉시와 평창군 등 이해관계자가 모두 모여 환경평가를 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릉(강원)=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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