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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현장 뜨거운 환호에 ‘국뽕’ 차올라도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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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현장 뜨거운 환호에 ‘국뽕’ 차올라도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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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일 ‘어쩔수가없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몰려든 전세계 기자들에게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이 사인을 해주고 있다. 베네치아/김은형 선임기자

지난 30일 ‘어쩔수가없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몰려든 전세계 기자들에게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병헌, 손예진이 사인을 해주고 있다. 베네치아/김은형 선임기자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달 29일 낮(이하 현지시각), 베네치아 리도섬의 ‘팔라초 델 카지노’ 3층 회견장에 일찍 들어가 자리 잡고 앉았는데, 한 이탈리아 여성 기자가 다가왔다. 그는 한국에서 왔는지 묻더니 “박찬욱 신작 영화를 어떻게 봤냐?”고 질문했다. 보통 국외 영화제에 오면 한국 영화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을 묻는 게 내 일인데, 반대로 질문을 받은 것이다. 그 기자는 내게 묻고는 정작 자신이 박 감독과 한국 영화에 찬사를 한참 늘어놨다.



마침내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회견장은 꽉 찼고, 직전 다른 영화 회견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진행자가 시간 관계상 질문을 많이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할 정도였다. 특히 내 옆 한 남성 기자는 회견 처음부터 처절하리만치 열정적으로 손을 들어, 나까지 ‘이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달라’고 손짓하며 지원에 나섰다. 결국 그는 마지막 추가 질문 기회를 얻었다. 불가리아에서 왔다는 그는 이병헌에게 질문했고, 회견이 끝난 뒤 내게 “같은 원작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영화도 봤는데, 두 작품이 완전히 달라. 대단한 창의력이야”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대체로 ‘국뽕’을 경계한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취재 대상에 접근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어떤 예술가의 성과를 개인의 것이 아닌 나라의 것으로 해석하는 건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권위주의 시절의 잔여물처럼 느껴져 거부감도 든다.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배우 이성민(왼쪽부터), 염혜란,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박찬욱 감독이 29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의 상영관 앞 레드 카펫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베네치아/AP 연합뉴스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배우 이성민(왼쪽부터), 염혜란,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박찬욱 감독이 29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의 상영관 앞 레드 카펫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베네치아/AP 연합뉴스


그런데 베네치아국제영화제 현장에서 ‘국뽕’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아침 7시부터 좋은 자리에서 ‘어쩔수가없다’ 언론 시사를 보겠다고 ‘팔라초 델 시네마’ 앞에 길게 선 줄, 영화 내내 크게 터지는 웃음과 박수, 기자회견이 끝나고 박 감독과 이병헌의 사인을 받겠다고 기자들이 뛰어나와 거의 아수라장이 된 회견장 등 현장에서 몸소 느낀 열기는 영화 공식 상영 뒤 9분간 이어진 기립박수 등의 표현으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기예르모 델 토로 등 베네치아에서 이미 황금사자상을 받은 거장 감독들,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등 세계적인 톱스타들이 리도섬을 찾아왔지만, 이번 영화제의 흥행을 담당한 주인공 중 하나는 분명히 ‘어쩔수가없다’와 박 감독, 이병헌 등 한국 영화인들이었다.



2004년 ‘올드보이’가 초청된 칸국제영화제에 취재하러 갔을 당시 박 감독은 ‘아시아의 떠오르는 신성’이었다. 박 감독과 배우 최민식 등이 오른 레드 카펫은 북적이지 않았고, 심사위원대상을 깜짝 수상을 할 때까지 취재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다. “감독님, 사인해주세요”라는 한국말을, 아니 영어나 프랑스어로라도 하는 외국인을 만난 적은 없었다.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올드보이’에 반한 관객 중 박 감독을 알아보고 사인을 받은 이들도 분명 있었을 텐데, 그들은 지금쯤 그 사인을 가보로 여길 것 같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 갈무리. 2일(한국시각) 현재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19개 리뷰가 모두 호평이어서 신선도 100점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 갈무리. 2일(한국시각) 현재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19개 리뷰가 모두 호평이어서 신선도 100점을 유지하고 있다.


“결과야 아무도 모르지만 ‘어쩔수가없다’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 내게 말 붙였던 이탈리아 여성 기자가 말했다. 괜한 칭찬이 아닌 게,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 올라간 외신 영화 기자들의 리뷰 점수는 1일 현재 100점이다. 이탈리아 주요 매체 12개가 경쟁 부문 진출작에 매기는 평점 역시 전체 21편 가운데 10편이 공개된 시점에서 3.7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 중이다. 다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캐서린 비글로의 ‘하우스 오 브 다이너마이트’,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비극적 현실을 영화로 옮겨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큰 사회적 이슈를 모으는 튀니지 여성 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아의 ‘힌드 라잡의 목소리’ 등이 남아있다.



영화제 상이라는 게, 올림픽처럼 정량적 평가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그해 최고 작품이 반드시 최고상을 수상하는 것도 아니다. ‘올드보이’가 초청받은 2004년 칸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걸작과는 거리가 먼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이었다. 당시 국제 정세나 어떤 감독을 두고 ‘이제 한번 탈 때가 됐다’는 등의 갖은 고려가 수상작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그럼에도 현지 반응과 평가로만 보면 ‘어쩔수가없다’의 수상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이병헌 연기에 대한 상찬도 쏟아져 남우주연상에 대한 기대감도 높인다. 오는 6일 밤 수상 속보를 쓰는 일이 벌어지길 기대해본다. 업무량이 많아져도 ‘어쩔 수가 없다’.



베네치아/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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