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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세]보이스피싱은 정부 실패다

머니투데이 이창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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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세]보이스피싱은 정부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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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보이스피싱에 쓰인 대포폰/사진=뉴스1 /사진=뉴스1

보이스피싱에 쓰인 대포폰/사진=뉴스1 /사진=뉴스1


가까운 친인척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 피해가 발생한 당일부터 경찰에 신고한 뒤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옆에서 지켜봤다. 그들의 수법은 놀라웠다. 자녀로 위장해 문자로 접근한 뒤 개인정보를 털어가고, 원격조정 앱을 설치하게 만들어 휴대폰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가장 금액이 많은 은행의 계좌이체한도를 높인 다음 이 계좌에 돈을 모아 한꺼번에 가져갔다. 피해가 발생하고 1시간 정도 뒤에 보이스피싱임을 인지하고 필요한 모든 조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1주일쯤 지나 절반의 피해는 회복했지만 절반은 회수하지 못했다. 남은 절반 중에 일부라도 더 찾기 위해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지인에게 연락해보니 "절반이라도 회수한 게 어디냐", "그냥 빨리 잊고 살아야 된다", "나도 주변에서 당한 사람 있는데 못찾았더라" 같이 도움은커녕 힘 빠지는 대답만 실컷 들었다.

믿고 의지할 곳은 경찰 뿐이었다. 경찰이 보이스피싱을 저지른 이들을 붙잡으면 이들에게 남은 피해금액을 받아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시작부터 뜻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담당 수사관은 시종일관 소극적이었고, 최종 붙잡은 3명 중에 1명만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피해금액이 상품권으로 바뀐 이후 추적이 어렵다는 말을 끝으로 더 이상 수사관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피해금액을 받아내는 과정은 별도의 법적 절차를 또 밟아야 한다. "이제 그만하자."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결국 피해자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개인적인 보이스피싱 경험을 꺼내는 것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보이스피싱 근절대책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서다. '보이스피싱 근절 종합 방안'엔 '은행의 무과실 배상 책임'이 포함됐다. 한마디로 피해자 과실이 있어도 은행 등 금융사가 전액 배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경험해본 보이스피싱 피해 과정에서 누구도 은행 탓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의심계좌를 동결하고, 일부라도 피해금액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은행의 재빠른 조치 덕분이다.

굳이 보이스피싱 피해를 외부의 탓으로 돌린다면 무기력한 경찰,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쉽게 설치되는 원격조정앱을 만든 제작사, 이를 제대로 관리나 감독하지 않는 정부일 것이다. 특히 범죄에 저렇게 쉽게 악용될 수 있는 원격조정앱에 대한 별다른 규제가 여전히 없고, 지금 이 시간에도 같은 수법에 당하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무과실 배상책임이 현실화한다면 앞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별다른 경각심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과정이야 어떻든 은행이 모든 피해금액을 배상해주기 때문이다. 은행은 배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종 인증이나 보안절차를 이중삼중으로 겹겹이 칠 것이고 금융소비자들은 다시 악명 높은 '액티브X' 시절 수준의 불편함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국내 첫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는 2006년이다. 이후 보이스피싱 범죄는 지속적으로 늘어 올해 7월 기준 피해액은 7766억원(1만4707건)으로 역대 최대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누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이렇게 키웠느냐 묻는다면 은행보단 정부를 탓할 것이다. 역사상 보이스피싱 근절에 가장 진심인 정부다. 보이스피싱을 금융사탓으로 돌리기 전에 지난 정부의 실패를 되돌아보고 보다 치밀한 해법을 기대해 본다.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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