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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잡지만, 불평등 키우는 정책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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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잡지만, 불평등 키우는 정책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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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규제, 부동산 강세는 여전
젊은 고소득층, 가계대출 차단
'자산불평등' 부작용, 차단해야


2분기 가계부채(가계신용)가 1,952조8,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19일 한국은행이 밝혔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붙어 있는 주택담보대출 상품 현수막. 뉴스1

2분기 가계부채(가계신용)가 1,952조8,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19일 한국은행이 밝혔다. 사진은 지난 19일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붙어 있는 주택담보대출 상품 현수막. 뉴스1


지난 6월 말부터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기 위해 강력한 대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선 '6·27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통해 수도권, 규제지역 내 주택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을 6억 원으로 제한하고 생애 최초 주택구입 목적 주택담보대출의 LTV(담보인정비율) 상한을 축소했다. 또한 '3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시행해 미래 금리 인상 위험까지 반영해 대출 한도를 줄였다. 7월 중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이 전월 대비 약 3분의 1로 급감하면서 해당 정책들이 과열된 수도권 주택시장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누구에게 집중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출 규제 강화 이후에도 주택시장은 뚜렷한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 한국부동산원 주택매매가격지수(종합) 전월 대비 증가율이 수도권은 6월 0.37%에서 7월 0.33%로 소폭 둔화했지만, 상승세가 여전하다. 반면 지방은 6월 –0.09%에서 7월 –0.08%로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로 가계부채 증가세는 꺾였지만, 수도권 주택 구매 수요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는 금융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대출 규제가 수도권 거주자의 주거 안정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필자가 최근 수행한 연구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명확히 보여준다.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을 목표로 LTV 상한을 높여주고, 금리를 낮춰주는, '디딤돌 대출' 같은 정책자금 대출을 공급하면 자가보유율이 오르고 주택자산 불평등이 완화되는 긍정적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가계부채 급증을 동반한다.

문제는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정책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고소득층에 대한 대출 규제를 강화할 때 발생한다. 이 규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소득은 높지만 아직 자산 축적이 충분치 않은 '고소득 저자산' 가구다. 전문직 청년이나 맞벌이 신혼부부처럼 열심히 일해 높은 소득을 올리지만, 부모의 도움 없이는 수억 원의 초기 자본을 마련하기 어려운 계층이 바로 그들이다. 강력한 대출 규제는 이들의 주택시장 진입을 차단한다. 결국 대출 제약에서 자유로운 고자산가들만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이에 따라 자가보유율은 하락하고 주택자산 불평등은 오히려 극심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러한 정책은 '노동 부자'로부터 '자산 부자'에게 부를 이전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 바로 이 연구 결과와 같다. 소득이 높을수록 대출 한도 감소 폭이 커지는 스트레스 DSR 3단계, 수도권과 규제지역 6억 원 주택담보대출 상한이 더해지면서 정책자금 대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고소득 저자산 가구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

금융 안정은 매우 중요한 정책 목표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특정 계층의 희생을 강요하고, 주택자산 불평등이 심화된다면, 이는 성공적인 정책이라 할 수 없다. 정부는 금융 안정을 위한 대출 규제, 주거 안정을 위한 저소득층 정책자금 대출 공급이라는 상충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이 정책 조합이 자산 불평등에 미칠 효과를 분석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함께 시행해야 할 것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