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경향신문 언론사 이미지

[정동칼럼] 민원 해결, 대통령과 상담사 몫인가

경향신문
원문보기

[정동칼럼] 민원 해결, 대통령과 상담사 몫인가

속보
경찰, 김건희 특검 추가 압수수색…통일교 자료 확보
2025년 7월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현장에선 행정 책임자들은 부재한 채 대통령이 직접 민원을 듣는 기형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이는 많은 시민이 자신의 문제를 하소연할 마땅한 창구를 찾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 즉 민원 해결 시스템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모든 민원을 다 다룰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민들은 혹시 모를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대통령 역시 그들의 모든 하소연을 다 들어줄 수 없다는 초조함이 역력한 채, 그 공간을 채웠던 불안감과 좌절을 고스란히 느꼈을 것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민원이 해결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고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다.

첫 번째는 끝없는 ‘기다림’이다. 민원인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 포기하거나, 끈질기게 버텨낸 소수만이 겨우 문제를 해결한다. 두 번째는 고통의 ‘저울질’이다. 민원은 그 고통의 크기나 피해자의 규모에 따라 우선순위가 결정되곤 한다. 이태원 참사 직전 수없이 접수된 위험 관련 민원이 무시된 것처럼, 때로는 사회적 관심과 파장이 큰 사건에만 주목하고 그 이면의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은 묻혀버린다. 이는 제도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가장 많은 민원은 현실적인 해결 가능성과 관계없이, 단지 누군가에게 자신의 억울함과 감정을 쏟아붓는 ‘듣기’로 끝이 난다. 현대 사회가 심리 상담사나 핫라인 상담사를 점점 더 필요로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해결은 할 수 없어도,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들어주기에 사회는 붕괴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일차적으로 마주하는 이들이 바로 국민콜 110과 같은 민원 상담사들이다. 이들은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불만과 분노를 가장 먼저 감당하는, 일종의 ‘총알받이’ 신세가 되고 있다.


작년 3월, 정부 민원 처리 사이트인 ‘위택스’에서 오류가 발생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갑작스럽게 26만건의 관련 상담이 쏟아지면서 상담사들은 업무량과 업무강도 급증은 물론, 무조건적으로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 결과, 직무 소진 실태조사에서 절반 이상이 매일 우울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7월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정책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1인당 하루 통화량이 70콜에서 220콜로 3배 넘게 폭주했고, 5분이었던 대기 시간은 1초로 줄어들었다. 많은 상담사가 이명과 두통을 호소하며 병가에 들어갔다.

이처럼 예견된 ‘민원 홍수’에 대해 정부는 늑장 대처하거나, ‘어딘가 뚫려 있는 하수구가 이 오물을 받아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눈을 감곤 한다. 그러나 그 하수구 역할을 하는 상담사들 역시 자신의 고통을 호소할 곳을 찾지 못하는 또 다른 민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결국 진정한 문제 해결은 바로 ‘듣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민원은 반드시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그 안에는 자살 충동, 고독사 위험, 직장 내 괴롭힘, 붕괴 우려 현장 등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둡고 긴급한 문제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거나, 때로는 그 자체로 해결이 되는 민원도 존재할 것이다. 민원 해결을 기다리는 이들의 간절함은 단순히 행정 절차를 넘어, 한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가진 민원 시스템의 해답을 찾고 싶다면, 민원의 최전선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상담사들에게 물어야 한다. 그들은 민원의 전문가이자,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아는 현장의 전문가들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스템의 병목 현상을 개인의 헌신으로 메우는 것은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의 몸은 하나인데, 그만 바라보게 만드는 세상이 과연 옳은 세상인가? 민원을 담당하는 이들조차 자신의 민원을 들어줄 곳이 없어 괴로워하는 현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민원일 것이다. 이제 이들의 고통을 개인의 헌신이 아닌, 시스템의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 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