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습 AI합성 이미지 [챗GPT를 사용해 제작] |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9월 초 찾아온 글로벌 빅 이벤트’
오는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양옆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란히 서면서 ‘북중러 연대 전선’을 깜짝 과시하는 ‘글로벌 빅 이벤트’의 현장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열병식에는 푸틴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대통령 대행), 노로돔 시하모니 캄보디아 국왕, 르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 통룬 시술리트 라오스 국가주석 등 26개국 정상이 참석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대한민국을 대표해 참석한다.
도대체 어떤 행사이기에 이렇게 전세계적 관심을 끄는 것일까
중국 전승절과 열병식는 어떤 행사?
중국 전승절은 1945년 9월 3일 일본의 항복을 기념하는 날로, 중일전쟁(1937~1945) 승리와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상징하는 기념일이다. 공식 명칭은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이다. 중국은 서구의 ‘유럽전승기념일(Victory in Europe Day)’과 달리, 아시아 태평양 전쟁의 특성을 반영해 일본과의 항전에 대한 승리를 특별하게 기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항일전승, 반제국주의, 중국의 국력과 위상 과시 등 국제정치적 행사로서도 의미가 부각된다.
전승절을 맞아 매년 대규모 열병식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80주년 열병식 행사에 국제적 관심이 더 크게 모이고 있다. 장병들의 일사불란한 행진 속 진행되는 열병식은 그 자체로 체제 선전의 무대이자 한 국가의 군사력을 과시하는 일종의 ‘쇼케이스’ 무대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말 집권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5년에 전승절 70주년을 기념해 열병식을 개최했다. 국경절이 아닌 전승절(9월 3일) 기념 열병식은 이때가 처음으로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관했다. 총 1만2000여명의 대규모 인원에는 항일전쟁에 참전했던 국민당·공산당 퇴역군인들까지 포함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015년 9월 3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서 연설을 하며 손짓을 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 박근혜 전 대통령(가운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앉아있다. [게티이미지] |
2017년에는 건군 90주년 기념 열병식이 네이멍구 주르허 훈련기지에서 열려 전자전을 담당하는 전략지원부대가 처음 등장했다. 이 행사는 군악대와 의전 행사 등을 생략한 1만2000여명의 실전 훈련 형태로 열려, 열병식 본연의 의미에 보다 부합하게 진행됐다.
2018년 4월에는 하이난 인근 남중국해에서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군 열병식이 열려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인 랴오닝호와 최신 핵잠수함인 093형과 094형을 선보였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19년 열병식 또한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올해 행사는 2015년에 이어 국경절이 아닌 전승절에 열리는 두 번째 열병식이다.
전승절의 주요 행사로는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병식, 국내외 지도자와 외교사절단 초청, 국가적 경축 행사 등이 있다.
주요 동맹국 정상들과 함께하는 외교 무대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번 전승절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라 전세계 주요국의 미국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커진 상황에서 열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국을 중심으로 경제·안보 구도가 개편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담 이후 개최되는 전승절 행사라는 점에서도 더욱 이목을 끈다.
80주년 열병식, 대만과 분리된 ‘공산당의 승리’ 내건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공산당의 승리’를 강조한다. 중일전쟁에 대한 ‘새 역사쓰기’이다.
10년 전 전승절 열병식에서 국공합작으로 ‘중국과 대만이 일제 침략에 맞서 함께 싸웠다’는 점을 부각했던 것과 딴판이다. 당시 중국은 항일전쟁에 참가한 국민당 노병을 열병식에 초청했으며 국민당 노병들을 항일영웅 명단에 포함하거나 위로금을 전달하는 모습을 선보인 바 있다.
‘공산당의 승리’를 강조하는 것은 대만과 남중국해 등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동시에 중국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초강대국’으로서 새로운 서사를 써내려갈 의중이란 평가다.
이날 홍콩 명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중국 군사과학원이 편찬해 인민해방군 출판사가 출간해온 ‘중국 항일전쟁사’ 개정 증보판에서 중국공산당을 ‘중류지주(확고한 기둥)’이었다고 표현하는 등 자국이 항일전쟁의 주축이었다고 강조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27일 “공산당이 항일전쟁의 최종 승리에 중추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민족 부흥을 이끄는 핵심 세력으로 거듭났다”고 전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이 지난 2015년 9월 3일(현지시간) 베이징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서 오픈카를 타고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앞을 지나며 장병들과 군중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
중국 군부 서열 2위인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도 지난달 26일 열린 항일승전 80주년 기념 군사 학술 심포지엄에서 “항일전쟁 시기에 인민의 기둥으로서의 중국공산당의 역할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중일전쟁 주력군이 장제스가 이끈 국민당군이라는 기존 주류 역사 인식에 반대되는 행보다.
중일전쟁의 역사를 수정하려는 이런 모습은 최근에도 시진핑 주석의 입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지난 5월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 열병식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지도 아래 중국 국민은 용감히 싸워 항일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러시아 관영매체 기고문에서도 2차대전 때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싸우며 전후 질서 확립에 기여했다고 적었다. 또 카이로 선언, 포츠담 선언, 1971년 중국이 유엔에서 유일하게 합법적 권리를 가진다고 결정한 유엔 총회 결의 2758호 등을 언급하며 이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주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긴장해라”…둥펑-26보다 한단계 진보한 둥펑-26D 공개할 듯
중국은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까지 사정권으로 하는 둥펑(DF) 계열 미사일들을 대거 공개할 전망이다.
이날 외신들에 따르면 중국은 ‘괌 킬러’로 불리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둥펑-26의 개량형인 둥펑-26D를 처음 공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둥펑-26은 2015년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 후 2016년 실전 배치됐으며 둥펑-26D는 여기서 정확도 등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둥펑-26D의 최대 사거리는 5000km 정도로 ‘제2 도련선’인 괌까지 도달 가능하며 주일 미군기지나 필리핀해를 타격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외교안보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는 최근 둥펑-26D가 인도·태평양의 세력균형을 기울어지게 했다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둥펑-26D는 인도·태평양에서 미국의 패권에 맞서는 무기로, 비대칭 전쟁을 추구하는 중국의 전략적 전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DF-26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군용 차량들이 지난 2015년 9월 3일(현지시간)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서 천안문 성루 앞을 지나가고 있다. [게티이미지] |
내셔널인터레스트는 둥펑-26D는 미군의 군사력 투사에 심각한 도전과제이며, 이에 따라 남중국해·동중국해·대만해협 등 분쟁해역에서의 미 해군·공군 전략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둥펑-26D 때문에 대만에서 유사 사태 발생 시 미 항공모함이 대만해협 1000km 밖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공중 지원 능력이 제한되고 (적의) 포화공격에 취약성을 노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열병식에는 또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및 일본의 SM-3 요격 시스템을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되는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둥펑-17도 선보일 예정이다.
사거리가 2500㎞인 둥펑-17은 남중국해·대만해협·동북아시아를 사정권으로 한다. 극초음속 활공체를 탑재해 음속의 10배 속도를 낼 수 있으며 비행 중 궤도수정이 가능해 적의 방공망을 뚫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열병식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41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열병식 때 첫선을 보인 둥펑-41은 사거리가 최대 1만4000㎞에 이르러 미국 수도 워싱턴을 포함해 지구상 거의 모든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공격 목표 오차범위가 100m에 불과하고 최대 10개의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미사일의 사정권에 든 일본도 ‘맞불’ 전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일본 매체에 따르면 일본 육상자위대와 미 해병대가 이번 달 이와쿠니 주일미군기지에 미국의 최신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타이폰’을 배치하는 훈련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방위성은 적 기지에 대한 ‘반격 능력’ 보유를 위해 자국산 장사정 미사일 개량형을 내년 3월께 규슈 구마모토현 육상자위대 건군주둔지에 처음 배치한다고 최근 밝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전투기, 드론, 극초음속 미사일 등 첨단 무기 공개도 전망된다. 특히 예행연습에서 공개된 최신식 초대형 무인 잠수정과 세계 최초로 2개의 좌석을 갖춘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殲·J)-20S의 등장 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