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에서 우크라 전쟁 책임은 “서방” 주장
트럼프 알래스카 회담이 ‘면죄부’ 역할
미국이 제시한 2주 시한인 1일 중국서 반서방 연대
트럼프 알래스카 회담이 ‘면죄부’ 역할
미국이 제시한 2주 시한인 1일 중국서 반서방 연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1일(현지시간)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2022년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3년 넘게 국제 사회에서 외톨이로 고립됐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외교 무대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알래스카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외교적 사면’을 확보한 그는 미국의 휴전 제안을 거부한 채 군사적 공세를 이어가는 한편,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방중에서 경제적·군사적 지원군인 중국과 북한 최고 지도자를 만나 새로운 외교판 짜기에 나선다.
1일(현지시간) 타스통신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 이사회 회의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서방에 돌렸다. 그는 “우크라이나 위기는 러시아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키이우(우크라이나 수도)에서 서방이 주도한 쿠데타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위기의 또 다른 원인은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끌어들이려는 지속적 시도”라며 “(평화) 합의가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이뤄지려면 위기의 근본 원인이 제거돼야 하고 안보 분야에서 공정한 균형이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SCO 정상회의 기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 샤르마 올리 네팔 총리와 잇따라 양자 회담했다. 그는 모디 총리를 “나의 친구”라고 부르며 “러시아와 인도는 수십년간 우정과 신뢰의 관계를 이어왔고 이는 미래 협력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외교 행보를 통해 서방의 압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외교 네트워크를 과시하며 국제무대에서 사실상 ‘완전한 복귀’를 선언했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푸틴 대통령의 외교 활동은 큰 제약을 받아왔다. 2023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하면서 120여개 ICC 회원국을 직접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는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올해 7월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도 화상으로만 참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뉴스 |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이번 SCO 정상회의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푸틴 대통령과 같은 독재 성향의 지도자들에게는 서방 제재에도 고립되지 않았음을 과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석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의 외교적 부활은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회담을 통해 부여한 ‘면죄부’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불량 지도자’로 낙인찍힌 푸틴 대통령을 지난달 15일 미국 영토인 알래스카로 초청해 단독 회담을 진행했다. 이어 18일에는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유럽 정상들을 만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양자 회담이 2주 내 열릴 수 있다”고 공언했다. 이 같은 발언 이후 스위스와 체코 등 유럽 국가들이 앞다퉈 회담 유치 경쟁에 나섰고 ICC 체포영장은 사실상 힘을 잃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제시한 회담 시한인 1일 푸틴 대통령은 오히려 중국에서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 촉진을 위한 중국과 인도의 노력과 제안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두 나라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와 관련해 “중국과 인도는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최대 원유 구매국”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이유로 인도에 관세 50%를 부과했지만 인도와 중국 모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러시아 전쟁 경제의 핵심 수출 품목인 원유 거래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의 외교 복귀전은 오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정점을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경제적 우군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군적 지원군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오르는 상징적 장면을 연출할 예정이다. 중국은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 비중을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2021년 15.5%에서 2024년 19.6%로 늘리며 경제적 지원을 강화했다. 북한은 약 1만~1만2000명의 병력을 러시아에 파병하고 152㎜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대규모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은 이번 열병식과 관련해 “전례 없는 권위주의 지도자들의 집결”이라고 표현하며 “단순한 역사 기념을 넘어 서방 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톈안먼 망루에서 외교적 승리를 과시한 뒤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러시아가 주도하는 동방경제포럼을 주재할 예정이다. 오는 5일 예정된 기조연설에는 36개국 약 6000명의 각국 대표단과 기업인이 참석한다.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자원 협력과 극동 개발 프로젝트를 앞세워 경제 네트워크 강화를 모색할 방침이다.
외교 무대 복귀로 우군을 확대한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러·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장 물러설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를 통해 전쟁 장기화를 정당화하고 체제 안정과 정권 유지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저녁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한을 제시했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러시아가 하는 일은 오직 전쟁을 이어가기 위한 투자뿐”이라고 지적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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