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전용특별열차. 지난해 8월 압록강 범람으로 수해을 입은 조중 접경 평안북도 의주군을 방문했을 때 사진.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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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돌 경축행사에 참석하려고 1일 낮 전용특별열차를 타고 평양을 떠나 해질 무렵 조중 접경 신의주에 도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2019년 네차례 방중 때 1·4차는 열차, 2·3차는 전용기를 탔다. 전용기인 ‘참매 1호’를 타면 평양~베이징 782㎞ 비행에 1시간20분 정도 걸리지만, 열차를 타면 평양~베이징 1333㎞ 이동에 적어도 18시간(무정차)~20시간 정도는 걸린다. 열차가 전용기보다 시간이 13.5~15배 더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왜 이번엔 ‘빠른’ 전용기를 놔두고, 훨씬 ‘느린’ 열차에 올랐을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열릴 ‘중국 인민의 항일전쟁 승리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전승절) 80돌 경축행사에 참석하려고 베이징에 갈 때 지나리라 예상되는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압록강철교(조중우의교).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
단종된 노후 기종인 구닥다리 전용기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다른 정상들의 최신형 전용기와 비교당하는 민망함을 피하고, 중국 쪽의 ‘각별한 예우’를 돋을새김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북한의 나라새인 ‘참매’의 이름을 딴 참매 1호는 옛소련 시절인 1974~1995년간 생산된 ‘일류신-62엠(M)’ 기종이다. 국가 정상의 전용기라는 격에 걸맞지 않은 단종된 노후 기종이다. 참매 1호가 언제 생산됐는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운데 정보 소식통은 “1980년대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참매 1호를 이용하면, 전승절 행사 기간 ‘양자 의전’이 아닌 ‘다자 의전’을 따를 수밖에 없어 참매 1호가 다른 정상의 전용기와 비교당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다. 교통전문가인 안병민 북한경제포럼 회장은 “푸틴의 전용기는 ‘일류신-96’ 최신형”이라며 “북으로선 국격 등을 고려해 단종된 노후 기종인 참매 1호가 비교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9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해외작전부대 참전군인들에 대한 제2차 국가표창 수여식’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전용열차는 느린 대신 “쪽잠에 줴기밥(주먹밥)”으로 표상되는, 공무에 동분서주하는 최고지도자라는 이미지 제고와 함께, 중국의 각별한 예우를 돋을새김하는 효과가 있다.
전용열차가 평양을 출발해 국경역인 신의주역까지 225㎞를 쉬지 않고 달리면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신의주에서 압록강철교를 건너 중국 구간에 들어서면 중국 기관차인 ‘둥펑’(DF·동풍)이 김 위원장의 열차를 이끌게 된다. 둥펑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전용기관차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압록강을 건너는 순간부터 중국 쪽의 ‘국빈급 예우’가 자연스레 창출되는 셈이다.
목적지인 베이징에 도착하기 전 북·중 국경역인 단둥역을 포함해 중국 구간에서 김 위원장의 방중 환영행사가 열릴 수도 있다. 단둥에서 베이징까지 1103㎞는 중간에 서지 않는다면 1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방탄인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평균 시속 45~50㎞ 정도로 운행한다.
열차는 전용기와 달리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숙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외교가에선 김 위원장이 2018년 방중 때 머물렀던 댜오위타이에 머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정보 소식통은 “북한 의전팀이 김 위원장이 머물 호텔을 따로 준비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리 보는 중국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 기념식 현장 |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열차에서 자거나 주중 북한대사관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방중을 앞두고 주중 북한대사관은 최근 보수 공사를 했다. 대사관 외벽 도색 작업을 새로 하고, 건물 상단에 원형 조형물도 설치했다. 대사관 외부 사진 게시판엔 그동안 가운데 크게 걸어둔 김 위원장 사진 대신 김일성 주석의 사진을 내걸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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