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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50년 맞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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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50년 맞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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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즐기는 말년의 쇼스타코비치. 도서출판 돌베개 제공

산책을 즐기는 말년의 쇼스타코비치. 도서출판 돌베개 제공


지난 8월9일은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세상을 뜬 지 꼭 50년 된 날이다.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이 작곡가의 서거 50돌을 맞은 올해, 국내 클래식 무대는 그의 작품들로 ‘풍년’이다.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과 오페라, 협주곡과 독주곡,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독자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현대의 음악 문법을 사용하면서도 유머와 아이러니를 섞어 대중의 인기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 돋보인다.



롯데콘서트홀 여름 클래식 축제 ‘클래식 레볼루션’(8월28~9월3일)은 그의 교향곡과 협주곡, 실내악곡 등 11곡의 ‘쇼스타코비치 보따리’를 풀어낸다. 3개 교향곡을 준비했는데, 서울시향이 6번, 경기필이 4번을 연주한 데 이어, 오는 3일엔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이 15번 교향곡을 들려준다. 이 축제 음악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지휘봉을 잡는다. 쇼스타코비치 마지막 교향곡인 15번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정리한 회고록에 비유된다.



“내 교향곡은 대부분 묘비다. 너무 많은 국민이 죽었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들의 묘비를 어디에 세우겠는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 제자 솔로몬 볼코프가 엮은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증언’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가 견뎌내야 했던 시절의 고뇌가 엿보인다. 그의 15개 교향곡은 20세기 교향곡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국내에선 1980년대 중반까지 거의 연주되지 않다가 21세기 들어 자주 연주된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작곡가의 의도를 해석하려는 통역사들의 전쟁터’란 평가를 받았다. 특히 1936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음악이 아니라 혼돈’이라고 그의 음악을 비판한 이후 신변 위협을 느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점점 모호해졌다. ‘1905년’이란 제목이 달린 교향곡 11번은 이 점에서 예외적이다.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1905년 1월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살 사건을 다룬 이 교향곡은 4개 악장에도 작곡가가 각각 표제를 붙였다. 공교롭게도 케이비에스교향악단과 국립심포니가 경쟁이라도 벌이듯 오는 11월21일과 12월6일 연달아 이 교향곡을 연주한다. 미국 유수 악단을 두루 거친 노장 지휘자 레너드 슬래트킨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신예 지휘자 안나 라키티나가 각각 두 악단을 지휘한다. 두 악단의 다른 해석을 비교해 들어볼 기회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왼쪽)가 8월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서울시향과 협연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왼쪽)가 8월2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서울시향과 협연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그의 실내악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금호아트홀이 올해 상주음악가로 선정한 아레테 콰르텟은 오는 4일 쇼스타코비치 현악4중주 1번을 연주한다. 국립심포니는 10월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아이비케이(IBK)홀에서 피아노3중주 2번과 ‘두대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5개의 소품’을 연주한다.



앞서 지난 4월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에서도 그의 교향곡 1번(청주시향)과 10번(창원시향), 11번(대전시향) 등이 연주됐다. 5월엔 서울시향이 남아공 출신의 전방위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가 만든 영상과 함께 10번 교향곡을 연주했다. 인천시향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가운데 가장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 5번을 공연했다. ‘더 하우스 콘서트’가 주관하는 여름 축제 ‘줄라이 페스티벌’은 5차례에 걸쳐 쇼스타코비치의 실내악을 선보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치하에서 유배되지 않았고 국외로 망명하지도 않았다. 그래선지 소련 체제에 투항한 순응주의자였는지, 아니면 음악으로 저항한 반체제 인사인지를 두고 논쟁도 벌어졌다.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최근엔 후자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음악학자 리처드 타러스킨은 “가장 암울한 시기에도 예술이 그 시대를 증언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표현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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