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매일경제 언론사 이미지

대법 "급발진, 운전자가 입증해야"… 방지장치 의무화할 때 [사설]

매일경제
원문보기

대법 "급발진, 운전자가 입증해야"… 방지장치 의무화할 때 [사설]

서울맑음 / 1.0 °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소송 중 이례적으로 제조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던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급발진 사고 유형에서 제조업자 책임을 인정하려면 운전자가 급가속 당시 가속 페달을 밟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피해자 개인이 차량 결함을 입증하지 못하면 구제받기 어려운 구조가 재확인된 것이다.

대법원 1부는 BMW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유족 2명이 BMW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유족들에게 4000만원씩 지급하라"고 했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급발진을 제조사 결함으로 최종 인정한 적이 없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이 결함 추정에 대한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에게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 영역에 속하는 결함을 일반 피해자가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손자가 사망한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역시 유족이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제조사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급발진 의심 신고는 매년 평균 30여 건 발생하고 있고, 그때마다 '운전자 실수냐, 차량 결함이냐'는 논란만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사후 법정 다툼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제도와 기술을 통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다.

일본은 2028년부터 판매되는 승용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잘못 밟더라도 차량이 장애물을 인식하면 속도를 자동으로 제한하는 시스템이다. 이미 2023년 이후 생산된 차량의 90% 이상이 해당 장치를 달고 있다. 고령자의 오조작 사고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가 신속히 대응한 결과다.

우리 정부도 법 개정을 통해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설치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그러나 준비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급발진 논란과 고령 운전자 사고가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하면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 피해자에게 '입증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업계가 제도와 기술로 예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