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로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배우 이병헌이 30일(현지시각) 낮 리도섬 한 호텔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CJ ENM 제공 |
레드 카펫 밖에 줄 서있던 관객은 “리”를 외치며 그에게 환호했고, 영화를 본 전문가와 언론은 “놀라운” “압도적인” 등의 표현을 쓰며 그의 연기를 극찬했다. 수상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쩔수가없다’의 배우 이병헌은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가장 큰 환대를 받은 인물 중 하나일 것이다.
29일 밤(이하 현지시각) ‘어쩔수가없다’의 첫 공식 상영 직전 레드 카펫에서 이병헌은 시종 여유 있는 모습으로 열광하는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함께 찍었다. 영화가 끝나고 9분 동안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을 때 다른 배우들은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지만,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30일 점심 리도섬의 한 호텔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그는 “남들이 보기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같았겠지만 멍한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잘 구별이 안 돼서 오히려 담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다음날 지인들이 동영상을 보내준 걸 보면서 이게 꿈이 아니었구나 싶었죠.”
‘어쩔수가없다’는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2000), '쓰리, 몬스터'(2004)에 이은, 박찬욱 감독과의 세번째 작품이다. 이병헌은 15년 전 ‘지.아이.조’ 촬영을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 때 마침 같은 도시에 머물던 박 감독에게서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고 했다. 박 감독이 미국에서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준비할 때라 농담으로 “한국 배우는 필요없어요?” 던진 말이 오늘의 현실이 됐다. “한참 지나 박 감독님이 옛날에 이야기했던 그 작품을 같이 하자고 연락을 주셨어요. 저야 당연히 좋았는데, 처음 주셨던 건 원래 기획했던 영어 시나리오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죠.”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제82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배우 이병헌이 30일 낮 리도섬 한 호텔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CJ ENM 제공 |
영화에서 이병헌이 연기하는 만수는 안정되고 평온한 중산층이 됐다고 자부한 순간 실직하며 애써 쌓아온 것들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재취업에 실패하며 벼랑 끝에 몰리자 그는 극단적인 선택, 즉 경쟁자들을 죽이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쟁취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평범한 중년 남성이 살인자가 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가 연기하는 만수는 주문처럼, 기도처럼 “어쩔 수가 없다”를 반복하며 자신의 범죄를 스스로 합리화하려고 애쓴다. “만수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잖아요. 고등학교 나와 25년 아득바득 일해서 겨우 집 장만하고, 또 아내를 무서워하는 소시민이기도 하고요. 이런 사람이 궁지에 몰린다고 살인까지 가는 설정에 관객의 감정 이입이 쉽지 않을 것 같았어요. 만수가 극단적 상황에 놓일 때마다 설득력 있게 연기하려고 했던 게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박 감독에게서 한국어로 번역한 대본을 다시 받고 읽은 뒤 “블랙 코미디가 제대로 드러나는 영화”라는 게 그가 본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잔인한 살인을 준비하면서 상대방 부부의 불륜을 우연히 알게 돼 전전긍긍하거나, 아들을 조사하러 온 경찰에 지레 겁을 먹었다가 태도를 바꾸는 그의 모습은 웃기면서 동시에 슬프다. 이번 영화에서 이병헌의 연기가 극찬을 받는 건 바로 이 지점, 희극과 비극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너무 재밌다’와 ‘확 깬다’를 가르는 건 정말 한끗 차이거든요. 감독님은 오버액팅을 요구했는데 저는 좀 절제하려고 노력한 부분도 있었어요. 그 미묘한 줄타기를 제대로 하는 게 가장 중요했죠.”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만수와 아내는 결국 행복하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고 했다. 목숨을 걸고 남의 목숨을 빼앗으며 돌려받고자 했던 행복을 다시 찾은 것 같지만, 비틀려버리고 상처받은 가족 각자의 진심 속에서 그는 “텅빈 결말을 느꼈다”고 했다.
‘어쩔수가없다’ 공개 이후 그의 연기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면서 이병헌의 남우주연상 수상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결과는 9월6일 밤 열리는 영화제 폐막식에서 공개된다.
베네치아/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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