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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SF 간판' 김초엽 "누구나 버리고 싶은 내 모습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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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SF 간판' 김초엽 "누구나 버리고 싶은 내 모습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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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김초엽 '양면의 조개껍데기'


세 번째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최근 펴낸 김초엽 작가는 가상과 현실을 철저히 구분하는 편이라며 소설에도 항상 현실과 맞닿은 부분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고 했다. 박시몬 기자

세 번째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최근 펴낸 김초엽 작가는 가상과 현실을 철저히 구분하는 편이라며 소설에도 항상 현실과 맞닿은 부분을 만들어 주려고 한다고 했다. 박시몬 기자


"어두운 사회에서 억압받는 인물들보다는 빛을 향해서, 더 좋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더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 대표 공상과학(SF) 소설가 김초엽(32)이 첫 번째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으로 수많은 이를 매혹한 이유일 테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정보라 작가의 말처럼 "시뮬레이션 안에서 살아가더라도, 안드로이드로 태어나 인공의 하드웨어가 씌워졌더라도, 어떤 존재 방식 속에서든 자신의 필멸을 바라보며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간다".

25일 한국일보와 만난 그는 "개인적으로는 비관적"이라며 "독자들을 떠올리며 냉소 쪽으로 흘러가는 마음을 다잡는다"고 터놓았다. 그저 낙관이 가진 힘을 믿기에 낙관을 붙들고 쓴다는 말이다. 최근 펴낸 세 번째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그가 "내 안에 얼마 남지 않은 낙관을 긁어모아 쓴" 이야기다.

슬프지만 기쁘기도 한 '양면의 조개껍데기'


표제작인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큐큐퀴어단편선 '팔꿈치를 주세요'(2021)에 먼저 실렸다. 주인공 '샐리'는 은하인 중에서도 다중 자아를 갖는 셀븐인이다. '레몬'과 '라임' 두 개 자아가 한 몸을 공유하면서 바통 터치하듯 의식을 '전환'한다. 문제는 둘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 가슴이 달린 몸을 경멸하는 레몬은 극심한 성별 불일치감을 겪는다. 지구인 '류경아'와 다자연애를 시작하면서 둘은 더욱 불화하고, 자아 분리 시술을 고민한다.

김 작가는 "낯선 인물들로부터 시작을 했지만 결국은 이게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독자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했다. "라임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 그대로 사람들이 봐주죠. 그렇기에 내 안에 있는 어둠(레몬)을 잘 이해하지 못해요. 일상을 사는 우리 모습처럼요. 누구나 안에는 숨기고 싶고, 버리고 싶은 내 모습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것조차 결국 다 나이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거죠."

약자와 소수자에 가닿은 그의 시선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확장하는 이유다. 그는 "소수자성을 갖는 인물들도 어떤 면에서는 기술을 잘 이용하거나 그 세계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하고 여러 면을 갖는다"며 "이들에게서 나와 공명하는 점을 찾아 읽어주시면 참 좋겠다"고 했다.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이런 삶의 다면성, 슬프지만 기쁘기도 한 양가감정을 아우른 제목.


양면의 조개껍데기·김초엽 지음·래빗홀 발행·384쪽·1만7,500원

양면의 조개껍데기·김초엽 지음·래빗홀 발행·384쪽·1만7,500원


"근사한 아이디어보단 감동 줄 수 있어야"



김초엽 작가는 이야기를 쓰다 보면 SF가 돼 있다며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은 리얼리즘과 달리 SF 세계에선 구조적인 변화를 보여줄 수 있기에 조금은 더 가능성을 넓게 열어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시몬 기자

김초엽 작가는 이야기를 쓰다 보면 SF가 돼 있다며 현실의 장벽이 너무 높은 리얼리즘과 달리 SF 세계에선 구조적인 변화를 보여줄 수 있기에 조금은 더 가능성을 넓게 열어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박시몬 기자


소설집의 문을 여는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녹슬고 싶어서 금속피부 이식을 원하는 '수브다니'에 대한 이야기다. 수브다니는 인간화 시술에 성공한 안드로이드. "인간이 되고 싶은 기계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냥 기계로 살고 싶었고 그래서 다시 기계로 돌아가고 싶은 기계"다.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 수시마 수브라마니안이 촉각에 대해 쓴 '한없이 가까운 세계와의 포옹'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 김 작가는 "피부가 단순히 외모나 정체성만 표현하는 게 아니라 기능성 기관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이렇게 얻은 아이디어에 평소 노트에 적어둔 단편적인 메모와 아이디어 여러 개를 막 섞고 이리저리 조합해서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다.

사람들이 갑자기 사물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설정인 '고요와 소란'은 독자 반응이 가장 궁금한 작품.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필립 파레노 전시 도록에 실을 작품을 의뢰받아 쓴 이야기다. 김 작가는 "이 소설을 쓸 때 내 안의 한계를 조금은 넘어선 느낌이었다"고 했다. 울산 출신인 그가 울산의 반구천 암각화와 고래를 소재로 쓴 '소금물 주파수'는 하마터면 만나지 못할 뻔한 작품. 동화 같은 분위기가 책의 전체 기조와 맞지 않아 빠질 뻔했다고.

그는 "동떨어진 다른 세계보다는 현실과 접촉면이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내 소설을 읽고 '이거 진짜 있을 법한 이야기다'라고 할 때 제일 기분이 좋다"고 했다. 차기작은 인간의 믿음에 대한 장편소설이다. "아무리 근사한 설정이나 아이디어라도 반드시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켜야 해요. 여운과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