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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5배' 평택 미군기지 달라는 무리수, 트럼프 속내는 뭘까[양정대의 전쟁(錢爭)외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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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5배' 평택 미군기지 달라는 무리수, 트럼프 속내는 뭘까[양정대의 전쟁(錢爭)외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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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군용차량들이 주차돼 있는 모습. 평택=뉴스1

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군용차량들이 주차돼 있는 모습. 평택=뉴스1


한미 정상회담에서 눈에 띄는 장면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 부지의 소유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해온 그가 이번에는 아예 부지 소유권을 언급한 것이다. 법적ㆍ외교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동맹국 정상의 면전에서 땅을 떼어달라고 한 그의 속내는 뭘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우리가 대규모 군사기지를 건설해 막대한 돈을 투입한 땅의 소유권을 한국으로부터 받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이 (기지 건설에)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임대가 아닌 소유 형태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싶다”고 했다. 외신들은 평택 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봤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전방 지역을 포함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미군기지를 통폐합해 중국의 턱밑에 건설한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 면적의 5배(1,467만㎡)로 해외 주둔 미군의 단일기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건설과 주둔 비용의 90% 이상을 한국이 부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지 소유권 이전 요구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당장 우리 헌법은 영토의 일부를 외국에 양도할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설사 이를 검토하더라도 한국 측의 부지 공여와 미국의 사용권을 규정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ㆍ소파)을 전면 개정하고 국회 비준도 거쳐야 한다. 일본ㆍ독일ㆍ이탈리아 등에서도 미군은 기지 사용권만 행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돈’과 관련이 있다. 우선은 국내 정치용 메시지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그간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비난해온 그는 한국이 14조 원을 투입한 기지를 미국이 건설했으니 빼앗아오겠다고 말함으로써 미국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는 방위비분담금 재협상 압박 카드의 성격이다. ‘과장된’ 카드를 꺼내 협상의 문을 넓히고 분담금 대폭 인상이나 군사적 기여 확대를 요구하려는 것이다. 최대치를 부풀려 요구한 뒤 점차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그의 전형적인 협상술이다.

그가 캐나다에 51번째 주 편입을 요구하고, 가자지구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해결책으로 해당 ‘땅’에 미국 자본의 투입을 제안한 것을 보면 ‘미국(인)=절대 안전’이란 도식을 갖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평택 미군기지 부지 소유권 요구가 미국 땅이 되면 한국의 안보는 영원히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단순한 논리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건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의식한 계산된 발언일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아시아를 중국 견제의 핵심 무대로 보고 있는 만큼 평택 미군기지의 전략적 가치를 부각시킴으로써 ‘미국 편에 확실히 서라’는 지정학적 줄 세우기의 맥락일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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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대 선임기자 torc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