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샤를로트 페리앙, '샤를로트 페리앙(모든 삶에 깃든)'
자서전이나 평전의 주목도란 본디 책 주인공의 이름값이 좌우하기 마련이다. 샤를로트 페리앙(1903~1999)의 자서전은 그런 면에서 헬렌 켈러, 스티브 잡스, 앙겔라 메르켈, 워런 버핏과 같은 쟁쟁한 이들의 책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저명한 인물의 생애만큼, 유명했어야 마땅하나 그러지 못한 인물의 삶을 발굴하고 들여다보는 것 또한 자서전의 기능이자 묘미일 터. 프랑스 1세대 여성 건축가이자 실내 디자이너인 페리앙의 자서전은 여기에 딱 맞는 책이다.
페리앙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직접 쓴 회고록이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다. 그는 건축과 디자인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의 삶을 개선하기를 바랐고, 이런 '주거 예술' 철학은 그가 설계한 기숙사, 군 숙소, 개인 주택, 사무실, 스키 리조트 곳곳에 녹아 있다. 일례로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인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프로젝트에서 페리앙은 주방을 맡았는데, 그는 주부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하며 요리할 수 있도록 거실과 통합된 주방 겸 바를 만들었다. 이 공간에서 여성은 더 이상 "잡일을 하는 하녀"처럼 밀려나 있지 않았다.
페리앙은 10년간 같이 작업한 유명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명성에 가려, 자신의 성과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공고한 남성 중심의 건축계 문화 탓이다. 페리앙이 1926년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 지원했다가 면전에서 "우리는 쿠션에 수놓지 않아요"라는 말로 거절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그리고 얼마 뒤 페리앙의 진가를 알아보고 함께 일하기를 제안한다.) 페리앙이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만든 의자 시리즈도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 만을 따서 'LC 시리즈'로 불렸다. "진짜 주역(가디언)"은 페리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가구 제조업체인 '까시나'가 이 시리즈의 공식 명칭을 '포퇴유 그랑 콩포르'로 정정한 것은 페리앙 재평가의 일환이다. 무려 사후 20년이 지난 뒤다. 페리앙의 이름이 좀 더 널리, 좀 더 오래 기억돼야 할 이유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샤를로트 페리앙, '샤를로트 페리앙(모든 삶에 깃든)'
1928년 촬영된 르 코르뷔지에(왼쪽)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사진. 을유문화사 제공 |
자서전이나 평전의 주목도란 본디 책 주인공의 이름값이 좌우하기 마련이다. 샤를로트 페리앙(1903~1999)의 자서전은 그런 면에서 헬렌 켈러, 스티브 잡스, 앙겔라 메르켈, 워런 버핏과 같은 쟁쟁한 이들의 책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저명한 인물의 생애만큼, 유명했어야 마땅하나 그러지 못한 인물의 삶을 발굴하고 들여다보는 것 또한 자서전의 기능이자 묘미일 터. 프랑스 1세대 여성 건축가이자 실내 디자이너인 페리앙의 자서전은 여기에 딱 맞는 책이다.
페리앙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직접 쓴 회고록이 국내에서 처음 출간됐다. 그는 건축과 디자인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의 삶을 개선하기를 바랐고, 이런 '주거 예술' 철학은 그가 설계한 기숙사, 군 숙소, 개인 주택, 사무실, 스키 리조트 곳곳에 녹아 있다. 일례로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인 르 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프로젝트에서 페리앙은 주방을 맡았는데, 그는 주부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하며 요리할 수 있도록 거실과 통합된 주방 겸 바를 만들었다. 이 공간에서 여성은 더 이상 "잡일을 하는 하녀"처럼 밀려나 있지 않았다.
샤를로트 페리앙과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가 1929년 프랑스 미술전 '살롱 도톤'에서 선보인 '주택 내부 설비'. 출처 까시나(Cassina) 홈페이지 |
페리앙은 10년간 같이 작업한 유명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명성에 가려, 자신의 성과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공고한 남성 중심의 건축계 문화 탓이다. 페리앙이 1926년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에 지원했다가 면전에서 "우리는 쿠션에 수놓지 않아요"라는 말로 거절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그리고 얼마 뒤 페리앙의 진가를 알아보고 함께 일하기를 제안한다.) 페리앙이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만든 의자 시리즈도 르 코르뷔지에의 이름 만을 따서 'LC 시리즈'로 불렸다. "진짜 주역(가디언)"은 페리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가구 제조업체인 '까시나'가 이 시리즈의 공식 명칭을 '포퇴유 그랑 콩포르'로 정정한 것은 페리앙 재평가의 일환이다. 무려 사후 20년이 지난 뒤다. 페리앙의 이름이 좀 더 널리, 좀 더 오래 기억돼야 할 이유다.
샤를로트 페리앙(모든 삶에 깃든)·샤를로트 페리앙 지음·유상희 옮김·을유문화사 발행·776쪽·3만8,000원 |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