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맨 오른쪽 아래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
한-미 정상회담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명의의 ‘최후통첩’이 한국에 도착했다.
문서에는 관세협상 당시 한국이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487억원) 투자의 세부 항목을 미국 요구대로 다 동의하라는 내용이 담겼고, 한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한-미 정상회담은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 전해졌다고 28일 복수의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러트닉 상무장관이 26일(현지시각) 미국 시엔비시(CNBC)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한국 정부의 자금을 미국 사회기반시설 구축을 위한 국가경제안보기금 등에 미국 마음대로 쓰겠다는 내용이다. ‘3500억달러 가운데 실제 돈은 5% 남짓만 투자되며 대부분은 보증’이라던 한국 정부 설명과는 차이가 큰 구상으로, 한국 정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한-미 정상회담 개최가 임박했다는 한국의 약점을 간파하고, 러트닉 장관이 강하게 밀어붙인 것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이와는 별도로 ‘한국이 31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정상회담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우려 속에,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20일), 조현 외교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21일)이 부랴부랴 미국으로 향했다. 뒤이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까지 워싱턴으로 달려갔지만, 러트닉 상무장관은 완강했다. 이런 상황은 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한 뒤까지도 이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회담을 하지 않고 돌아오는 시나리오’까지 검토하며 러트닉의 요구를 거부했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또다른 문제도 있었다. 회담 열흘 전쯤부터 한국 극우파들과 미국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직통 채널’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을 방해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감지된 것이다. 지난 7월18일 채 상병 특검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극동방송, 김장환 목사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뒤 ‘한국 정부가 교회에 대해 잔혹한 급습을 하고, 미군기지까지 들어가 정보를 가져갔다’는 주장이 한국 극우들로부터 미국 마가세력으로 퍼져나갔다. 지난 15일에는 미국 극우 마가 세력의 대표적 인물인 고든 창이 “한국의 6월 대선이 광범위한 부정행위로 얼룩졌고” “이 대통령은 맹렬한 반미주의자로 과거 주한미군을 ‘점령군’이라 불렀고, 미국이 일본의 한국 식민지 지배를 지지했다고 비난했다”고 주장하는 칼럼을 의회 전문지인 ‘더 힐’에 실었다.
대통령실은 ‘마가 세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는’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소통해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24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급히 워싱턴으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이 결정은 “안보실이 주도하고 대통령이 판단한 것”이라고 강 실장은 28일 브리핑에서 전했다.
문제는, 그때까지 와일스 비서실장과 통하는 제대로 된 접촉 창구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강 실장은 “생각보다 백악관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았다”며 “외교안보라인이 비서실장과 함께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강 실장의 연락을 받은 와일스 실장은 ‘정상회담에서 보자’고만 했다. 하지만 강 실장은 ‘회담 전에 만나야 한다’고 계속 요청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된 건, 정상회담이 당일인 25일, 그것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글을 트루스소셜(오전 9시20분쯤)에 올린 지 1시간 여쯤 뒤였다. 40분 간 진행된 면담에서 강 실장은 냉철하기로 유명한 와일스 실장에게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고, 마지막 나오는 순간에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오해’에 대해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강 실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처음 말했을 땐 (와일스 실장이) ‘알겠다’ 정도의 반응을 보이다가, 나중엔 ‘보고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정상회담 현장에서 이 대통령이 이 문제를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오해가 있었다”고 했다.
강 실장은 당시 상황을 전하며 “(회담이 끝난 뒤 와일스 실장에게) 좋은 대화였다고 짧은 영어로 고맙다고 전하니, 40분 대화하는 동안 한번도 웃지 않았던 와일스 실장이 그때 한번 웃었다”고 했다. 강 실장은 “(그 웃음을) 본인도 역할을 했다는 취지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정부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기업인들도 회담 성공을 위해 발벗고 뛰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제조업 부흥에 관심을 둔 만큼, 한미 협력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미국 여름 휴가로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워싱턴에 모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통령 순방에 동행한 기업인들이 평소 친분이 있는 기업들과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미국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 22명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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