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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시진핑·푸틴 나란히 선다 …'신냉전' 상징 될 中열병식

매일경제 김성훈 기자(kokkiri@mk.co.kr), 김상준 기자(kim.sangjun@mk.co.kr), 송광섭 특파원(song.kwangsub@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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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시진핑·푸틴 나란히 선다 …'신냉전' 상징 될 中열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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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미동맹 우선 기조를 재확인한 직후 중국과 북한이 관계 회복에 나서면서 동북아시아 정세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다음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열병식에서 톈안먼 망루 주석단에 오르게 됐다. 은둔의 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다자외교 무대에 데뷔하는 자리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련해준 셈이다.

김 위원장의 열병식 참석은 그간 소원했던 북·중 관계를 단숨에 회복하는 동시에 북한이 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반미 진영의 일원이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또 격화하는 미·중 경쟁 속에 한반도를 둘러싼 '한·미·일 대(對) 북·중·러' 대결 구도를 강화해 한국의 부담을 키울 것으로도 관측된다.

28일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베이징 방문은 그동안 추상적으로 거론됐던 동북아의 전략적 지형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과거 미국·소련이 주도한 냉전 구도에 버금가는 미·중 '신(新)냉전'을 공고히 하는 결정적 장면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홍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이 열병식 주석단에서 시 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는 모습은 국제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이번 열병식에 참석할 △상하이협력기구(SCO) △브릭스(BRICs)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 회의(CICA) 정상들과 개별 회담을 한다면 반미 진영의 경제안보 공동체에 본격 합류하는 계기도 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위원장은 이번 중국 방문길에 시 주석, 푸틴 대통령과 사상 처음으로 3자 정상회의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6·25전쟁 때도 성사되지 않았던 북·중·러 회의가 현실화하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승부수"라며 "한미, 한·미·일의 대북 비핵화 공조를 무력화하려는 빅카드"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오는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큰 이벤트로 만들기 위한 포석의 성격도 있다"면서 "시 주석이 평양을 답방할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김 위원장의 공격적인 외교노선 전환은 평양~베이징~모스크바 3각 협력을 강화해 체제 안정을 도모하려는 승부수 성격이 강하다는 얘기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동시에 한·미·일에 비해 느슨했던 북·중·러 3각 협력을 단단히 묶으려는 의도인 셈이다.


중국도 이 대통령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이번 미국 방문길에 '안미경중(安美經中)' 시대의 종언을 선언하자 끝내 북·중 관계 개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북·중 관계 개선을 미·북 대화 재개를 희망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중국 전문가인 황재호 한국외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참석은 중국 외교의 성과"라며 "북·러 밀착이 조명되고 있지만 북·중·러와 한·미·일이라는 진영 구도에서 여전히 중국이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가 내포돼 있다"고 분석했다. 황 교수는 "북한의 참석으로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확인됐다"며 "북한과 대화 등을 원하는 한국과 미국에 중국과의 관계를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따라서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앞서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포탄을 제공하고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는 등 북·러 군사 밀착을 강화하자 불만을 표시했다. 과거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의 회담을 기념하는 상징물을 철거했고, 중국 내 북한 노동자 문제에도 뻣뻣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에 북한도 러시아를 치켜세우고 중국을 홀대하며 냉랭한 관계가 이어졌지만 이번 김 위원장 방중으로 상황이 급반전됐다.

김 위원장의 방중 결정에는 푸틴 대통령 역할이 컸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러시아 고위급 인사들이 잇따라 방북했는데 이를 계기로 김 위원장에게 방중을 권유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 역시 김 위원장을 움직여 '반미 연대'를 과시하면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크렘린궁은 27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이 오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나흘간 중국을 방문한다"고 공개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는 수십 년 만에 가장 우호적인 대외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고 평가했다. '미·북 대화'라는 외교적 업적을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 북한의 군사 지원이 필요한 푸틴 대통령, 한·미·일 3각 협력을 견제하려는 시 주석 등이 모두 김 위원장에게 러브콜을 던지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김 위원장과 한국을 대표해 참석하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베이징에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다만 주최자인 시 주석이 본인 영향력을 부각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 우 의장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할 개연성은 배제할 수 없다.

[김성훈 기자 / 김상준 기자 / 베이징 송광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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