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택 DGIST 이사장·고려대 전 총장 |
많은 기관이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창립 기념식, 비전 선포식, 국민보고대회, 출범식, 취임식 등 그 성격과 형태는 정말 다양하다. 행사의 목적은 내부 결속을 위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대외 홍보용이다. 각종 행사의 개최 여부와 성격은 기관의 책임자가 결정하지만 행사의 준비와 진행은 지시를 받은 실무 담당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행사의 주인공으로서 무대의 중심에 서는 기관의 책임자가 행사의 성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학 총장 재임 시 여러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특이한 버릇이 생겼다. 여운이 많이 남는 행사일수록 궁금한 점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 무대 구성은 누구 아이디어일까?' '이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밤새워 고생했을까?' '멋진 장면을 연출한 기획사는 어디일까?' 등등. 정작 행사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분들의 역할이 결국 행사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경험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덕을 갖춘 진정한 리더라면 행사를 준비한 실무자들의 노고와 기여도를 인정하고 치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행사의 주인공을 빛나게 만들고 행사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우물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뜻의 '음수사원 굴정지인(飮水思源 掘井之人)'은 이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크레디트처럼 행사에 노출되지 않는 숨은 스태프들의 역할을 소개하고 고마움을 표하는 모습을 각종 행사장에서도 언젠가는 보았으면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를 찾는 것이 작은 소망이다.
젊은 차세대 지도자를 육성하는 일본의 마쓰시타 정경숙 교정 정문에는 '내일의 태양'이라는 조각품이 설치돼 있다. 조각가인 가토 아키오의 작품이다. 왼쪽에는 '정의와 힘'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를 손에 든 남성, 오른쪽에는 '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여성, 그 아래에는 곤란과 역경을 상징하는 구름이 있으며 가운데에 진리를 상징하는 태양이 그려져 있다. '이 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정의, 평화와 함께 진리를 추구해 갈 힘을 얻기를 염원하는 의미가 담겼다'고 기록돼 있다. 깊이가 남다른 교훈이다.
그런데 정경숙을 거쳐간 졸업생들 사이에는 이 조각품에 대해 구전되는 철학적 뒷얘기가 있다. 일본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 창업주인 고(故)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조각 작품을 설치하기 위해 전국에서 조각가를 공모했고, 최종적으로 세 명의 후보가 남았다. 가장 이름이 높던 작가는 '얼마의 예산이 있습니까. 예산에 맞춰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고, 지명도가 조금 낮은 또 다른 작가는 '원하시는 방향대로 제작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마지막 무명의 조각가는 마쓰시타 회장의 모든 저서와 정경숙의 설립취의서를 읽고 '회장님이 생각하는 인재상과 교육기관의 목표는 이런 모습일 것 같다'며 시안을 미리 그려 와 면담했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상징적인 작품이니 가장 유명한 조각가에게 의뢰하자고 의견을 냈지만 마쓰시타 회장이 선택한 조각가는 무명의 가토 아키오였다. 정문에 설치된 작품은 누구나 눈으로 볼 수 있고 작품에 담긴 뜻은 해설을 보면 이해할 수 있지만, 당시 주변의 권유를 물리치고 무명의 조각가에게 작품을 맡긴 마쓰시타 회장의 철학과 결단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예술 작품은 물론,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사물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더 큰 의미와 가치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사람도 겉모습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잠재력이 깊숙이 내재돼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정진택 DGIST 이사장·고려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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