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6월17일 파로제도 스토카스토반에서 열린 회의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덴마크 정부가 수십년에 걸쳐 그린란드 여성과 어린이 수천명에게 본인의 동의 없이 ‘강제 불임시술’을 한 덴마크의 옛 정책에 대해 처음으로 사과했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27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우리는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책임을 질 수는 있다. 덴마크를 대표해 사과의 말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린란드인이라는 이유로 그린란드 여성과 소녀들이 받은 “체계적인 차별”, “겪어야 했던 신체적 정신적 피해 모두에 대해” 사과한다고도 했다. 성명은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총리와 공동명의의 성명으로 나왔다.
덴마크 공영방송 디알(DR)은 지난 2022년 덴마크 정부가 1966~1970년 산아 제한 정책의 일환으로 약 4500명의 그린란드 여성과 어린이의 자궁 내 피임장치(IUD)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그린란드 여성 인구는 약 9000명에 불과해, 전체 여성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가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그린란드라디오(KNR)는 지적했다. 피해자 중에는 12살 소녀도 포함됐다고 알려져 있다.
무치 에게데 전 그린란드 총리가 “제노사이드”라고 비난한 이 사건은, 그린란드가 독자적인 보건체계를 갖춘 1992년 전까지 간간이 이어졌다. 닐센 그린란드 총리는 이후 일부 덴마크 의사들에 의해 발생한 ‘강제불임시술’에 대해 이날 사과했다. 이 매체는 1992년 이후에도 15명의 그린란드 여성이 비자발적 임신중절의 대상이 된 것으로 그린란드 보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강제 불임시술’ 피해를 입은 그린란드 여성 143명은 덴마크 정부를 상대로 4300만덴마크크로네(약 93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은 현 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날 성명에서 프레드릭센 총리는 덴마크 정부가 “그린란드인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을 포함하는 다른 어두운 장들”을 인지한다면서 “덴마크를 대표해 사과하는 것은 이런 다른 잘못에 대한 사과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다른 잘못’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1953년까지 덴마크의 식민지였던 그린란드에서는 1950년대 그린란드 어린이 20여명을 덴마크로 데려가 사회화 과정을 실험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분노를 산 바 있다.
일각에서는 덴마크 쪽의 사과 시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사과는 덴마크가 미국 대사대리를 그린란드 내 ‘영향력 공작’을 편다는 이유로 불러 항의한 몇시간 뒤 나왔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획득 의지를 거두지 않은 가운데 불거졌는데, 그린란드에서는 덴마크가 과거 자행했던 일들이 뒤늦게 밝혀지며 독립 지지 여론이 높아지는 추세다. 미국에 우호적인 여론까지 더해지는 게 덴마크 정부로서는 불편했을 수 있다. 게다가 사건이 폭로된 뒤 덴마크 정부는 공식 조사 결과에 바탕해 조처하겠다며 사과를 미뤘다. 그러다 9월 초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갑자기 사과를 했기 때문이다.
그린란드의 옌스 총리는 이날 소셜미디어에 “사과가 지금에서야 이뤄졌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너무 늦었다”고 썼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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