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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밀실·피범벅·나체까지…전세계 열광한 서울판 ‘슬립노모어’

매일경제 권효정 여행플러스 기자(kwon.hyojeong@mkto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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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밀실·피범벅·나체까지…전세계 열광한 서울판 ‘슬립노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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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스 쿠팡 대표 "야간 노동이 주간보다 힘들다는 증거 알지 못해"
뮤지컬 ‘슬립노모어 서울’ 8월21일 공식 개막
대한극장, 250억 원 들여 호텔 세트로 재탄생
전세계 누적 관객 265만 명 기록한 흥행작
뉴욕 14년 장기 공연 이어 서울서 최대 규모


(왼쪽부터) 펠릭스 바렛 펀치드렁크 창립자 겸 연출,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 맥신 도일 펀치드렁크 공동 연출 및 안무가 / 사진=슬립노모어 서울

(왼쪽부터) 펠릭스 바렛 펀치드렁크 창립자 겸 연출,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 맥신 도일 펀치드렁크 공동 연출 및 안무가 / 사진=슬립노모어 서울


한때 서울을 대표하던 충무로의 대한극장이 낯선 호텔로 바뀌었다. 호텔에 들어서면 벌거벗은 나체와 피범벅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충격적 장면들로 19세 미만은 입장조차 불가하다. 배우와의 신체 접촉은 기본, 행운의 관객은 배우와 둘만의 밀실로 끌려들어가 비밀스러운 순간을 공유한다. 그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두 사람만 안다. 배우들은 7개 층, 수십 개 방에 흩어져 공연한다. 관객들은 그들을 따라다니며 공연을 관람한다.

지난 20일, 세계가 열광한 이머시브(관객 참여형) 공연 ‘슬립노모어 서울(Sleep No More Seoul)’ 미디어 간담회가 열렸다. 7월 24일부터 프리뷰 공연으로 관객들의 심장을 두드린 이 작품은 21일 막을 올렸다.

슬립노모어 서울 간담회 현장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슬립노모어 서울 간담회 현장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간담회 현장에는 ’슬립노모어 서울‘ 주최·제작사 미쓰잭슨의 박주영 대표와 함께 원작사 펀치드렁크의 핵심 창작진이 모두 모였다. 창립자 겸 연출 펠릭스 바렛, 공동 연출 및 안무가 맥신 도일, 프로젝트 어드바이저 콜린 나이팅게일, 조명 디자이너 사이먼 윌킨슨, 의상 디자이너 데이비드 이스라엘 레이노소, 디자이너 리비 보건이 참석해 한국 무대의 방향을 직접 설명했다.

설명하고 있는 펠릭스 바렛 펀치 드렁크 창립자 겸 연출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설명하고 있는 펠릭스 바렛 펀치 드렁크 창립자 겸 연출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펀치드렁크는 영국의 몰입형 공연 단체로 펠릭스 바렛이 2000년대 초 만들었다. 이들은 고전 작품을 기반으로 배우의 격렬한 몸짓, 설치 미술, 이미지 연출을 결합해 관객이 직접 극 속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장르인 ’이머시브 시어터‘를 개척했다.

펠릭스 바렛 펀치 드렁크 창립자 겸 연출은 “이머시브 시어터는 기존 공연의 모든 규칙을 깨고 관객을 이야기 중심에 떨어뜨려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한다”며 “특정 캐릭터를 따라가도, 공간을 탐험해도 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모험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설명하고 있는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설명하고 있는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박주영 미쓰잭슨 대표는 “조명, 음향, 가구, 소품, 건축 설계까지 모든 요소에 연출 의도를 담아 섬세하게 작업했다”며 “과거 대한극장의 흔적과 현재의 슬립노모어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관전 포인트도 짚었다. “특정 캐릭터만 쫓기보다 여러 캐릭터를 만나길 바라며 공간 자체도 서사의 일부인데 조명, 소품, 가구, 심지어 먼지까지도 연출 의도가 담겨 있다”며 “ 또 혼자 관람할 것을 권하는데 혼자일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일탈감이 극대화된다”라고 밝혔다.

설명하고 있는 맥신 도일 공동 연출 및 안무가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설명하고 있는 맥신 도일 공동 연출 및 안무가 / 사진=권효정 여행+ 기자


맥신 도일 공동 연출 및 안무가는 “슬립노모어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기반으로 하는데 처음 구상할 때 ‘말없이 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고 우리는 움직임을 언어로 택했다”며 “야심, 초자연주의, 죄책감, 살인 같은 주제를 움직임으로 표현했고 건축적 디자인 역시 안무에 큰 영향을 줬다”라고 말했다.

리비 보건 디자이너는 “대한극장의 높은 층고와 긴 복도가 배우들의 움직임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라고 언급했다. 사이먼 윌킨슨 조명 디자이너는 “서울 무대에서는 조명 효과를 가장 웅장하게 구현할 수 있었다”며 “극장 곳곳에 숨어 있는 효과를 찾아보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콜린 나이팅게일 프로젝트 어드바이저는 “서울 버전은 건물 자체가 핵심”이라며 “이 건물이 있기에 지금의 공연이 가능했고 새로운 사운드, 조명, 배우들의 움직임이 더해져 유일한 버전이 됐다”고 전했다.


셰익스피어 작품, 히치콕 감독 스타일로 재구성
펀치드렁크 크리에이티브팀 / 사진=슬립노모어 서울

펀치드렁크 크리에이티브팀 / 사진=슬립노모어 서울


‘슬립노모어 서울’은 관객이 직접 공간을 탐험하며 이야기를 완성하는 공연이다. 공간 자체가 작품의 일부다. 펀치드렁크가 빚어낸 ‘슬립노모어’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히치콕 감독 스타일로 재구성했다. 독창적 안무, 풍부한 사운드트랙, 1930년대 스코틀랜드 분위기를 구현한 공간을 결합해 강렬한 무대를 만든다. 관객은 어느 배우를 따라갈지 길을 직접 정하고 여정에 따라 매번 다른 경험을 한다. 재방문 관람객이 많은 이유다.

2003년 런던 초연을 시작으로 2009년 미국 보스턴을 거쳐 2011년 뉴욕으로 건너가 10년 넘게 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뉴욕에서는 14년간 장기 흥행을 이어갔고 2025년 1월 막을 내렸다. 전세계 누적 관객 265만 명 이상을 기록했다. 대사는 없다. 퍼포머의 몸짓만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논버벌 형식은 언어 장벽을 지우며 강한 몰입을 끌어낸다.

현재는 중국 상하이에서 2016년부터 공연 중이다. 한국에서는 미쓰잭슨이 제작을 맡아 역사상 가장 큰 스케일로 선보인다.


대한극장의 변신, 250억 원 규모 투자
(왼쪽부터) 콜린 나이팅게일, 데이비드 레이노소, 박주영 대표, 펠릭스 바렛, 맥신 도일, 사이먼 윌킨슨, 리비 보건 / 사진=슬립노모어 서울

(왼쪽부터) 콜린 나이팅게일, 데이비드 레이노소, 박주영 대표, 펠릭스 바렛, 맥신 도일, 사이먼 윌킨슨, 리비 보건 / 사진=슬립노모어 서울


서울 공연을 위해 제작사는 대한극장을 1930년대풍 호텔 ‘매키탄 호텔(The McKithan Hotel)’로 재창조했다. 11개 상영관이 사라지고 호텔 로비, 객실, 복도, 계단, 바 등 세밀한 세트로 교체됐다. 건물 개조에만 250억 원이 투입됐다. 공간은 조명, 소품, 벽지, 심지어 먼지까지 이야기와 연결되도록 설계했다.

관객은 호텔 게스트라는 설정 아래 끊임없이 층을 오르내리고 자유롭게 공간을 돌아다닌다. 어디로 이동할지, 누구를 따라갈지 선택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배우들은 1시간 길이의 공연을 총 세 번 반복한다. 그러나 관객이 마주하는 장면은 매번 달라진다.

규칙은 단 하나, 절대 말하지 말 것
모든 관객은 공연 내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마스크는 배우와 관객을 구분하는 장치다. 공연 중 대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진과 영상 촬영도 금지다. 오직 몰입만 허락된다. 관객은 어디로 향할지, 어떤 배우를 좇을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3시간의 탐험, 체력 충전은 필수
관람 시간은 약 3시간. 관객은 건물 전체를 오르내리며 공연을 따라간다. 프리뷰에서는 맥베스, 맥베스 부인, 맥더프 같은 주요 인물을 쫓는 관객들로 좁은 계단과 복도가 붐비기도 했다. 제작사 측은 서울 무대가 미국 공연보다 더 큰 스케일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관객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모든 여정은 ‘맨덜리 바(Manderley Bar)’에서 시작해 그곳으로 돌아온다. 화려한 조명과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에서 관객은 긴장으로 얼룩진 체험을 정리하고 새로운 세계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한다.

공연 안에서 관객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걷는다.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배우, 아니면 더 큰 무리를 따라갈지, 다른 길로 방향을 틀지는 전적으로 내 선택이다. 그 순간의 판단 하나가 이후 마주치는 장면 전체를 바꿔놓는다. 눈앞에서 배우가 광란의 춤을 추는 동안 어딘가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린다면, 그 비명의 근원을 쫓아가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도 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어도 경험은 완전히 달라진다. 누군가는 맥베스의 발걸음을 좇고 다른 이는 복도 끝에서 부인의 속삭임을 따라간다. 공연이 끝난 뒤 서로의 감상을 나누면, 마치 각자 전혀 다른 세계를 다녀온 듯한 이야기들이 교차한다. 누구도 같은 공연을 본 적이 없다. 바로 거기에 ‘슬립노모어’의 진짜 전율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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