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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서 용서로 나아간 '거미 작가'…부르주아 대규모 회고전

연합뉴스 박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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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서 용서로 나아간 '거미 작가'…부르주아 대규모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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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거미 조각상 '엄마'부터 인물·밀실 등 대표작 106점 선보여
호암미술관에서 30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루이스 부르주아 작 '엄마'(Maman)(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27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야외에 전시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모양 청동 조각 '엄마'(Maman). 0225.8.27. laecorp@yna.co.kr

루이스 부르주아 작 '엄마'(Maman)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27일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야외에 전시된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모양 청동 조각 '엄마'(Maman). 0225.8.27. laecorp@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사람 키보다 큰 갈색 청동 거미가 전시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당장에라도 전시실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거미는 작가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거대한 거미 모양 청동 조각으로 유명한 20세기 현대미술 거장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대규모 회고전 '덧없고 영원한'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오는 30일부터 열린다. 국내 미술관에서 대규모 부르주아 회고전이 열리는 것은 2000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25년 만이다.

루이스 부르주아 작 '꽃'(Les Fleurs)[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루이스 부르주아 작 '꽃'(Les Fleurs)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전시는 그의 초기 작품인 1940년대 회화부터 조형물 '인물'(Personages) 연작, 1990년대에 시작된 대형 설치 작품 '밀실'(Cell), 드로잉 등 70여 년의 여정을 보여주는 10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대표작인 거미 조각상 '엄마'(Maman) 연작 중 하나인 '웅크린 거미'도 전시된다. 작가의 어머니는 태피스트리(tapestry) 복원가로 평생 실과 씨름하며 지냈다. 부르주아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실로 집을 짓는 거미의 형상에 투영했다.

작가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양육하고 보호하며 아버지에게 배신당한 연민의 대상이자 동시에 경쟁과 질투의 대상이고 자기를 버린 존재로 여겨졌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 어머니와 연결된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어머니에게 버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거미 조각 외에 임신한 여성을 묘사한 회화, 모유를 암시하는 조형물 등에서도 어머니란 존재는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루이스 부르주아 작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루이스 부르주아 작 '아버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he Father)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어머니만큼 중요한 또 다른 대상은 아버지였다. 부르주아의 아버지는 그가 10살 때부터 가정교사와 외도했고, 이를 알게 된 부르주아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품었다.

1974년 설치작 '아버지의 파멸'은 아버지와의 고통스러운 관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무대처럼 정면만 공개된 유리관 안은 강렬한 붉은빛 조명으로 물들고, 중앙의 식탁 위에는 고깃덩어리가 놓여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식탁에서 아버지를 끌어내려 사지를 찢어 먹어 치우는 상상을 했고, 이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이는 아버지를 단순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고 동일시하려는 오이디푸스적 심리를 담고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 작 '붉은 방(부모)'(Red Room (Parents))[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루이스 부르주아 작 '붉은 방(부모)'(Red Room (Parents))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밀실' 연작 중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는 '붉은 방(부모)'도 전시된다.

문으로 둘러싸인 방 중앙에는 붉은 고무로 덮인 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낡은 실로폰과 장난감 기차, 불어로 '사랑해'라고 수 놓인 쿠션 등이 놓여 있다.


하지만 관람자는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문틈으로만 안을 엿볼 수 있다. 마치 아이가 부모의 은밀한 순간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루이스 부르주아 작 커플(The Couple)[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루이스 부르주아 작 커플(The Couple)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의 작품 세계에서 가족만큼 중요한 주제는 성(性·sexuality)이다. 남녀의 생식기나 여성의 가슴을 형상화한 작품이 많다.

이중 남성의 성기를 묘사할 때는 불안정한 모습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다수다. 위아래로 길게 뻗은 조형물은 바닥 쪽이 매우 가늘어 금세 쓰러질 것처럼 보이게 제작됐다.

또 남성의 신체와 여성의 신체를 결합하거나 겹쳐 표현하는 식의 작품들도 있다. 남성의 성기를 형상화해 놓고 제목을 '작은 소녀'라고 붙이기도 했다.

루이스 부르주아 작 '집-여자'(Femme Maison)[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루이스 부르주아 작 '집-여자'(Femme Maison)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작가의 작품이 불안·분노·성적 긴장 등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작품은 점차 용서와 포용, 화해와 극복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토피어리 4'는 인체에서 나무가 자라나는 형상의 조각이다. 작품 속 인체는 다리가 하나 없지만, 그 몸에서 자란 나무는 아름다운 푸른 꽃을 피운다. 꺾인 나뭇가지에서도 다른 색의 새로운 꽃이 피어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진아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는 "상처받고 부러졌지만, 작품을 피워내는 작가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33년간 정신분석을 받은 부르주아는 "누군가가 예술가라면 이는 그가 온전한 정신을 지녔다는 증표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했다.

평생 트라우마와 싸우며 피워낸 그의 걸작들은 내년 1월 4일까지 호암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유료 관람.

루이스 부르주아2003년 뉴욕 자택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사진은 낸다 랜프랭코.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루이스 부르주아
2003년 뉴욕 자택에서 루이스 부르주아. 사진은 낸다 랜프랭코.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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