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사진 왼쪽부터 네 번째)과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사진 왼쪽부터 세번째)가 주요 관계자들과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함께 모여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SK그룹 |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다시 한국을 찾으면서 SK바이오사이언스와의 관계가 재조명되고 있다. 재단과 SK바이오사이언스의 만남은 의례적 일정이 아니라, 지난 10여년간 이어온 신뢰와 협력을 토대로 미래 글로벌 보건 전략을 새롭게 모색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게이츠 재단 핵심 인사들과 SK바이오사이언스는 총 세 차례 공식 일정을 가졌다. 라이트재단이 주최한 글로벌 보건 라운드테이블, 트레버 먼델 게이츠 재단 글로벌 보건 대표와의 단독 미팅, 그리고 빌 게이츠가 직접 참석한 만찬 자리다. 특히 만찬에는 SK바이오사이언스 안재용 사장이 참석해 차세대 백신과 글로벌 공급 전략을 논의했다. 재계에서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그룹 차원을 넘어 글로벌 보건 파트너십의 핵심 주체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SK바이오사이언스와 게이츠 재단의 인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측은 장티푸스·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통해 협력 관계를 다져왔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속도감 있는 성과물을 내게 하는 마중물이 됐다. 2022년, 게이츠 재단의 지원과 SK바이오사이언스의 개발 역량이 결합해 국내 최초 코로나19 백신 '스카이코비원'이 탄생한 것이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도 독자적인 대응 능력을 확보한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한 '백신 주권'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올해 만남에서도 주요 화두는 '넥스트 팬데믹 대비'였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백신과 예방 의약품 과제를 중심으로 협력 확대 가능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진다. 또 다른 핵심 의제는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한 공공보건 협력으로, 백신 접근성이 낮은 국가를 위해 SK바이오사이언스와 게이츠 재단은 합리적 가격의 백신 공동 개발과 공급 모델을 모색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만남을 협력 확대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개별 백신 프로젝트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보건 시스템 전반을 설계하는 차원으로 협력 관계가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펜데믹 대비는 SK바이오사이언스를 '차세대 글로벌 백신 허브'로 재확인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팬데믹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생산·공급 체계를 한국이 보유하는 것은 국제 보건 질서에서도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공공보건에 관한 논의 역시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 글로벌 보건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 구조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보유한 개발·생산 역량에 게이츠 재단의 국제 네트워크가 결합할 경우 새로운 감염병 대응은 물론 한국 바이오산업의 위상 강화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 국산화 경험을 바탕으로 폐렴구균, 조류독감 백신, 메신저 리보핵산(mRNA) 플랫폼 등 주요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나서는 만큼, 성과에 따라 한국이 '국제 백신 허브'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빌 게이츠와의 파트너십은 하나의 기업과 글로벌 재단의 협력을 넘어, 한국이 글로벌 보건 질서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며 "SK바이오사이언스가 만들어낼 향후 성과에 따라 한국 바이오산업의 미래와 세계 공공보건 시스템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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