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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막은 적 없다” vs 은행 “확실한 허가없인 못해”…퇴거대출 책임 미루기에 실수요자만 ‘발동동’ [기자24시]

매일경제 이용안 기자(lee.yonga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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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막은 적 없다” vs 은행 “확실한 허가없인 못해”…퇴거대출 책임 미루기에 실수요자만 ‘발동동’ [기자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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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대출 규제로 전세퇴거자금 대출길이 꽉 막힌 가운데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단지 근처 공인중개사사무소 앞에 전세 물건 광고가 크게 줄어 있다. 이승환 기자

6·27 대출 규제로 전세퇴거자금 대출길이 꽉 막힌 가운데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단지 근처 공인중개사사무소 앞에 전세 물건 광고가 크게 줄어 있다. 이승환 기자


“은행에 전세퇴거자금대출(퇴거대출)을 금지하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6·27 대출 규제 이후 퇴거대출의 요건이 까다로워져 시민들이 이를 이용할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한 한 금융당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규제 이후 임대인이 본인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살고 있을 때 거주하는 곳의 보증금이 0원이면 퇴거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당국이 대출을 막으라고 한 적이 없으니, 은행들이 대출을 재개하면 해결될 일로 보인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관련 제도의 허점을 지적한 기사를 보도한 지 3주가 넘게 지났지만, 주요 시중은행들은 여전히 임대인이 거주하는 곳의 보증금이 0원이면 퇴거대출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은행은 당국의 확실한 ‘허가’ 없이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괜히 대출을 취급했다가 나중에 당국으로부터 한 소리 듣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은행들은 영업에 새 규정을 적용할 때 당국으로부터 공문이 왔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6·27 대출 규제 직후에도 은행들은 특정 상황에서 대출이 가능한지 헷갈리면 일단 제한하고 봤다.

은행은 당국의 확실한 허가 없이는 대출 재개가 어렵다고 재차 설명한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가계대출과 집값을 잡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건 상황에서 추가 대출을 늘리는 행위를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토로한다. 규제 직후 7월 들어 가계대출 증가세가 잠시 주춤해졌는데, 혹시라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팔라졌을 때 화살이 본인들에게 향할 것을 의식한 것이다.

당국은 이런 상황에서 퇴거대출을 막은 적이 없으니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 중이다. 애초에 대출 제한을 요청하지 않았던 만큼 이를 재개해도 된다는 공문을 전달하기도 어색하다고 주장한다.


당국과 은행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피해를 보는 건 당장 퇴거대출을 받아야 하는 실수요자다. 이들은 기습적인 규제 시행으로 자금 마련·이사 계획이 틀어진 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규제가 시행된 지 벌써 두 달이나 흘렀다. 당국과 은행이 퇴거대출 재개를 위한 방안을 내놓을 때다.

이용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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