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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극과 팬덤 사이 틈새 공략…저출생 시대 기현상 ‘가족극, 아동극’이 떴다?

헤럴드경제 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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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극과 팬덤 사이 틈새 공략…저출생 시대 기현상 ‘가족극, 아동극’이 떴다?

서울맑음 / -3.9 °
올 상반기 아동극 7.7% ↑, 티켓판매 3.8% ↑
뮤지컬 ‘건전지 아빠’에 MZ 엄마·아빠 총출동
다양한 세대 겨냥 가족극 등장, 틈새시장 공략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충전하는 뮤지컬 ‘건전지 아빠’. [NHN링크 제공]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충전하는 뮤지컬 ‘건전지 아빠’. [NHN링크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꿈에도 그리던 아빠와의 캠핑을 떠난 여섯 살 동구. 한층 들떠 객석 1열의 아이를 가리키며 깜짝 놀라 말한다. “아빠, 아빠, 여기 딱따구리 있어요. 딱따구리야 안녕” 첫 공격에 놀랄 새도 없이 개구리와 다람쥐도 등장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연신 터진다. 마지막 타자에게 “다람쥐야, 안녕”이라고 하자, 1열 남자아이도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충전하는 뮤지컬 ‘건전지 아빠’. 인기 캐릭터도, 스타도 나오지 않는 이 무대가 통했다.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진솔하게 담아내면서다. 게다가 한눈팔 새가 없다. 70분의 짧은 시간 동안 끊임없이 관객 참여를 유도한다. 아이들이 웃자, 함께 온 엄마 아빠가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웃는다. 한화이글스 소속 류현진 선수의 아내인 배지현 전 스포츠 아나운서도 만 2살, 4살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찾았다. 공연 후 만난 배 전 아나운서는 “재밌게 잘 봤다”며 “아이들도 집중해서 잘 봐서 좋은 시간이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최근 막을 내린 뮤지컬 ‘건전지 아빠’가 만들어낸 극장 풍경이 독특하다. 만 2세~7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과 ‘젊은 부부’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젊은 엄마, 아빠’의 나이대는 대체로 30대 중후반~40대 초반. 힙스터들이 모이는 거리에서 만날 법한 트렌디한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총출동했다.

요즘 국내 공연계에 아동극, 가족극이 늘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아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한 토호 엔터테인먼트의 나호코 야마자키 본부장은 “한국에서 가족 뮤지컬이 많이 보이는데 요즘 붐이 일고 있는 상황인지 궁금하다”며 “일본에선 볼 수 없는 현상인데 흥미롭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사이 가족극 형태의 연극, 뮤지컬이 조금씩 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집계한 2025년 상반기 공연시장 티켓 판매 현황에 따르면 아동 공연은 전년 대비 공연 건수가 7.7%나 늘었다. 티켓 가격은 평균 2만 3000원. 티켓 판매액은 3.8%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충전하는 뮤지컬 ‘건전지 아빠’. [NHN링크 제공]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충전하는 뮤지컬 ‘건전지 아빠’. [NHN링크 제공]



인기 아동극, 가족극은 스테디셀러 원작을 바탕으로 하거나 애니메이션, 유튜브를 통해 접한 인기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특히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흥행 불패’다. ‘구름빵’, ‘알사탕’은 비롯해 ‘장수탕 선녀님’, ‘달샤베트’ 등이 친숙한 아동극이다. ‘사랑의 하츄핑’, ‘핑크퐁 아기 상어’, ‘캐치! 티니핑’과 같은 슈퍼 IP(지적재산권)도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1순위 무대다. ‘건전지 아빠’ 역시 전승배, 강인숙 부부 작가의 동명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을 원작으로 했다. 물론 순수 창작 뮤지컬이나 연극도 많다. 유소년 야구단을 다룬 ‘야구왕, 마린스!’는 한국을 넘어 해외 진출까지 한 성공작이다.

어린이 배우가 등장하고 어린이 관객이 주로 찾고 있지만, 이들 작품은 대부분 ‘가족극’을 지향한다. 기존에도 아동극, 가족극은 있었지만 부모와 아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창작자들은 “국내에선 가족극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아이들 취향으로 편중된 공연이 많았고, 다양한 연령대를 타깃으로 한 가족극이라고 해도 가족극이라고 하면 아동극이라는 편견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전지 아빠’는 애초 타깃부터가 ‘부모 세대’였다. ‘건전지 아빠’의 프로듀서인 오선화 NHN링크 부장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관람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함께 관람하며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원하는 부모를 타깃으로 삼아 제작한 뮤지컬이 ‘건전지 아빠’였다”며 “공연을 통해 의미과 감동, 즐거움을 얻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가족극 콘텐츠를 원하는 부모, 기존 가족극과 내용과 의미 면에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원하는 부모들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말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충전하는 뮤지컬 ‘건전지 아빠’. [NHN링크 제공]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애를 충전하는 뮤지컬 ‘건전지 아빠’. [NHN링크 제공]



실제로 ‘건전지 아빠’를 검색하면 각종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작품 후기가 올라오고 있다. “부모들이 아이보다 더 재밌게 관람했다”는 리뷰가 많다는 것을 창작진도 확인했다. ‘저출생 시대’라는 점이 무색할 만큼 공연장엔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신선하다.

오선화 부장은 “저출생 시대이긴 하나 문화적 체험에 대한 부모님들의 관심도는 매우 높다”며 “현재 유아, 초등학생을 키우는 30~40대 부모 세대는 자라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문화적 경험을 많이 한 MZ~X 세대다. 경험 중심의 소비를 중요시하고 문화적 경험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아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봤다.


오픈런 연극 ‘보물찾기’ [DPS제공]

오픈런 연극 ‘보물찾기’ [DPS제공]



가족극 중엔 ‘틈새시장’ 공략 차원에서 등장한 무대도 많다. 대학로에서 오픈런 공연 중인 ‘보물찾기’는 새로운 관객층 개발 차원에서 시도된 작품이다.

대학로 공연계는 현재 극단적으로 양분되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겪고 있다. 되는 작품은 잘 되지만, 관객이 들지 않는 작품들은 한없이 곤두박질 중이다. 잘 되는 작품은 상당수가 탄탄한 팬덤을 갖춘 ‘대학로 스타’들이 출연하는 작품, 대학로 관객들의 취향 따라 움직이는 트렌디한 작품이다. 두 경우가 아닌 대다수 작품은 관객 동원이 어렵다. 오픈런 공연은 특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픈런 가족극 ‘보물찾기’ 제작사인 DPS컴퍼니 노희순 대표는 “소극장 위주로 20~30세대를 타깃 삼아 오픈런을 올리는 기획사들의 경우 높은 임대료와 달라진 세대와 취향의 관객 등의 변화로 점점 제작이 어려운 환경이 됐다”며 “소극장 공연은 하향산업이 되고 마는 걸까 고민하던 중 새로운 관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족극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DPS컨퍼니에서 장장 6년간 개발한 연극 ‘보물찾기’는 노희순 대표의 실제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연의 관객층이 다양하다. 고등학생, 기업 단체 관람은 물론 중장년 세대가 노부모와 함께 공연을 찾는다. 연령대가 훌쩍 높아진 ‘가족극’인 셈이다.


타깃 세대가 다를 지라도 ‘가족극’은 요즘 시대엔 보기 힘든 건전한 이야기, 따뜻한 웃음과 정서를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각각 일상과 시간이 중요해지며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시간도 부족한 데다, 설사 식탁 위에 앉더라도 휴대폰 삼매경에 빠지기 일쑤다. 요즘 시대에 가족극은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둘러 앉아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신(新) 4인용 식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선화 부장은 “요즘 가족들은 각자 다른 콘텐츠와 각자의 기기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가족들이 함께 경험하는 문화에 대한 필요성과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며 “가족극은 한 공간에서 같은 이야기를 보고 서로 공감하고 감상을 나누며 소통과 정서적 유대감을 높일 수 있는 콘텐츠다. 매일 정신없이 반복되는 가족들의 일상에서 공연장에서의 특별한 문화적 경험이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