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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르포②] 뿌리 깊은 문화와 역사, 광양의 DNA를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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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르포②] 뿌리 깊은 문화와 역사, 광양의 DNA를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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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구 기자] 「글쓴이의 말」광양을 철강도시라는 단일한 틀로만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이번 르포의 출발점입니다. 제철소와 항만으로 상징되는 산업도시이지만, 그 안에는 충절과 문화유산이 공존하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지역 언론인으로서 나는 광양의 또 다른 얼굴을 기록하고 알리는 것이 도시의 미래를 새롭게 여는 길이라 믿습니다.

(문화뉴스 이동구 기자) 해발 208m 마로산성에 서면 섬진강 물줄기가 굽이치고, 광양만의 바람이 성벽을 스친다. 광양 마로산성은 전남 광양시 광양읍 마로산 정상(해발 208.9m)에 위치한 삼국시대 백제가 초축한 협축식 산성으로 2007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성곽은 둘레 550m, 폭 5.5m, 외벽 높이 3~5m 규모이며 석비레층 위에 기단 없이 협축식으로 축조됐다. 발굴조사에서는 성벽과 건물지 17동, 문지 3곳, 집수시설 11곳, 우물과 수혈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다.

출토된 토기와 철기, 청동기, 그리고 '마로관'과 '군역관' 명문기와는 마로현의 행정 치소 기능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건물지는 대부분 통일신라 시기의 것이며 탄화미가 발견된 건물터는 군량미를 저장한 창고로 추정된다. 이처럼 마로산성은 군사적 요충지이자 행정 기능을 겸한 산성으로 백제와 신라 접경지대에서 전략적·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광양 마로산성  © 한국학중앙연구원

                                                               광양 마로산성  © 한국학중앙연구원


광양읍 중심부에 자리한 역사문화관은 일제강점기 군청 건물을 개보수해 만든 공간이다. 붉은 벽돌과 낡은 목재 창틀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광양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충절로 싸운 위인을 배출한 도시이자 역사의 주요 변곡점에 자리한 곳이다. 광양역사문화관은 삼국시대부터 노량해전, 강희보·강희열 형제 의병장, 매천 황현 선생까지 충의와 지조의 역사를 담고 있다.

전시관 초입에는 국보 103호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모형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반출됐다가 환원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정유재란 당시 전장이던 광양만은 오늘날 광양제철소와 광양항이 들어선 동북아 물류 허브로 변화했다. 흑백사진 전시에는 현대사의 굴곡을 기록한 광양 출신 사진작가 이경모 선생의 작품이 소개된다.

광양은 또한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지켜낸 백영 정병욱 박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정병욱 박사는 윤동주의 친구이자 후배로, 강제 징집되며 어머니에게 원고 보관을 부탁했다. 그 덕분에 해방 이후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광양은 지금 이러한 유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고 있다. 2021년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은 국내외 현대미술을 잇달아 소개하며 남해안 문화벨트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문을 연 한국창의예술고등학교는 미디어아트와 영상, 연극을 융합 교육으로 키워내며 청년 예술가들의 산실이 되고 있다. 시는 오는 2026년 문화예술재단 출범을 목표로 지역 예술인 지원과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를 확대하고 있다.

산업과 문화의 접목도 시도되고 있다. 제철소의 폐철을 활용한 조형예술, 항만 크레인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아트 공연, 갯벌과 해양을 무대로 한 생태문화축제가 기획 단계에 올라 있다. 시민 스스로 문화도시 전환의 주체가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취재 중 만난 한 청년 예술가는 "광양의 힘은 거대한 제철소도, 항만도 아닌 시민들의 이야기"라며 "이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광양은 도시 곳곳에서 문화적 실험을 이어간다. 매화축제와 연계한 섬진강 문화벨트, 서천변 문화거리의 야외공연, 광양문화예술회관의 공연 유치까지 공간은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이 흐름은 결국 '산업도시 광양'과 '문화도시 광양'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려는 시도의 연장선이다.


무더위를 피해 저녁시간에 한잔 술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누던 자리에서 서동용 전 국회의원은 "문화도시는 건물보다 서사가 먼저다. 광양의 DNA는 이미 준비돼 있다. 깨우는 일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산업화의 기억, 역사적 저항의 흔적, 생활문화의 원형, 그리고 예술적 상상력이 겹겹이 쌓여 광양의 서사를 만들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이야기에 시민 모두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일이다".며 기자의 다음 소재의 어려움을 술잔에 녹여냈다.

천년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광양의 역사와 문화는 산업의 속살을 적셔가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제2의 린츠'를 꿈꾼 1탄의 서막에 이어, 2탄은 광양의 DNA가 어떻게 깨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광양이 문화도시로 변모하는 여정은 이제 막 본격적인 장을 열고 있다.


3편에서는 [광양 르포③] 변화를 설계하는 리더십과 언론의 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뉴스 / 이동구 기자 pcs819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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