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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석, 이것은 결국 윤리의 문제다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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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석, 이것은 결국 윤리의 문제다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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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 박물관에 전시된 하와이 카밀로 해변의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네덜란드 헤이그 박물관에 전시된 하와이 카밀로 해변의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전세계 플라스틱 쓰레기가 해류를 타고 모여드는 미국 하와이 카밀로 해변에서 플라스틱과 모래, 조개껍데기 등이 엉겨 붙어 하나가 된 ‘복합 응결 물질’이 발견됐다. 지구과학자 퍼트리샤 코코런 등은 이것들을 수집·연구한 결과, 응당 새롭게 발견된 암석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4년 미국지질학회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들은 이 발견물에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플라스틱석)란 이름을 붙였다. 인간이 만들어낸 플라스틱이 모닥불이나 더운 날씨 등에 녹으면서 기존 암석 등과 융합된 결과 아예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석은 인간 활동이 지구의 지질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시대, 이른바 ‘인류세’(anthropocene)를 보여주는 여러 이정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인간의 영향력이 너무 커진 나머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이 지구의 지층에 각인될 지경까지 왔다는 것이다. 플라스틱석이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서로 매우 달라 보이는 ‘인공물’과 ‘자연물’이 뒤엉킨 모습이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메라처럼 부자연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좀더 깊이 따져보면, 부자연스럽다는 것 또한 인간만의 감각일 뿐이다. 인간 역시 다른 존재들처럼 자연의 일부다. 그렇다면 인간이 공장에서 만들어낸 플라스틱 역시 결국 자연물 아닌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인류가 부자연스러운 물질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자연스러운 지구를 해치고 있다’는 감각이다. 그렇기에 인류는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플라스틱처럼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것의 생산과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러나 냉혹한 진실은, 지구 자신은 이러나저러나 아무 관심 없다는 데 더 가깝다. 35억년 전 바닷속에서 남세균이 광합성 활동을 시작했을 때, 산소는 당시 지구에선 몹시도 부자연스러운 물질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 산소 때문에 대기의 상태가 바뀌었고, 그 덕에 존재하게 된 오늘날 우리가 그 결과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이 대목에서 인간의 짧은 잣대로 지구의 깊은 역사를 재야만 하는 어려움을 체감한다. 누군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플라스틱이나 남세균이 만들어낸 산소나 결국 같은 거’란 궤변을 꺼낼지도 모른다. 산소가 대기 속에 자리 잡았듯, 플라스틱도 결국 지층 속에 화석으로 담겨 이 지구의 일부분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이미 플라스틱을 소화하도록 진화한 미생물이 나타났다며, ‘살아 있는 지구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는 기대까지 표출한다. 이런 아전인수는 그리 낯설지도 않다. “이산화탄소는 생명의 필수 물질”이라며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주장, 자연에서도 인간은 방사선에 노출되기 마련이라며 핵폐기물의 위험을 축소하는 주장 등 대부분의 낙관론에서 비슷한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건 지구가 아니라 ‘우리’다. 예컨대 플라스틱은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들에게 즉각적인 피해를 끼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피해가 광범위하고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위기에 빠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이때 우리가 피할 수 없는 핵심적인 물음은, 과연 ‘우리’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다. 해양 폐기물로 고통을 겪는 남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은, 폐어구에 묶인 채 버둥거리다 숨이 끊어지는 고래와 바닷새는 과연 우리가 보호해야 할 ‘우리’에 포함되는가? 산모의 배 속에서 생태계에 축적된 미세플라스틱의 영향을 받을 태아는, 그 뒤로도 대대손손 이어질 지구 위 뭇 생명들은? 만약 그들이 ‘우리’라면,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지구가 언젠간 플라스틱을 소화해낼 테니, 잘 견뎌봐”라고 말할 수 있을까?



45억년 지구의 나이까지 가늠해봐야 하는 차원에 든다면, 개인적으론 언제나 낙관보다는 비관하는 방향을 선택하고 싶다. ‘지금, 여기’에서 폐허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이 지구와 우주, 미래 등으로 제멋대로 규모와 차원을 높여가며 “앞으론 다 잘될 것”이라고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끊임없이 돌아가는 ‘행복회로’ 앞에서, “이것은 결국 윤리의 문제”라고 다시금 되새겨볼 뿐이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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