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채상병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을 재검토했던 국방부 조사본부가 경북경찰청에 사건 기록을 넘기면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의 혐의점을 상세히 서술한 28쪽 분량의 ‘수사보고’를 함께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본부는 당시 국방부의 압력에도 임 전 사단장 혐의를 경찰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이 수사보고를 윗선에 보고하지 않고 경찰에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경향신문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국방부 조사본부의 2023년 8월24일 경찰 인지통보서 및 수사보고 전문’을 보면, 조사본부는 임 전 사단장을 ‘(사건)관계자’로 명시하면서 그의 혐의점들을 상세히 적었다. 채 상병이 목숨을 잃은 경북 예천군 수해 피해 실종자 수색작전에서 임 전 사단장이 했던 지시들이 구체적으로 기재됐다. 임 전 사단장이 구체적 임무를 뒤늦게 하달하고 안전대책 수립을 충분히 할 수 없게 했다는 정황 등이다.
경찰에 넘긴 이 수사보고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수사보고는 조사본부가 앞서 작성했던 보고서들보다 임 전 사단장을 비롯한 해병대 상부의 혐의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동안 군사법원 등을 통해 알려진 조사본부의 채상병 사건 보고서는 중간보고서와 최종보고서가 있다. 조사본부는 중간보고서에는 ‘임 전 사단장을 비롯한 해병대 상급 관계자 6명에 대해 혐의점이 있다’는 취지로 적었다. 하지만 이후 최종 보고서에는 ‘대대장 2명’만 혐의자로 특정해 논란이 일었다.
이 수사보고는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로 특정하지 않고 관계자로만 적었지만 혐의점을 자세히 적으면서 사실상 임 전 사단장을 ‘혐의자’로 보이게 한 것으로 해석된다. 수사보고에는 혐의자로 특정한 최진규 전 해병대 포11대대장과 이용민 전 해병대 포7대대장 2명의 혐의는 2~3쪽 분량인 반면, 사건 관계자인 임 전 사단장의 혐의점에 대한 설명은 9쪽에 달했다. 수사보고에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재검토 결과가 보고된 시점에서 추가로 조사된 내용도 반영됐다고 한다. 조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 특검에서 이 수사보고를 언급하며 “임 전 사단장의 혐의를 경찰에 알렸다”고 진술했다.
조사본부는 이 수사보고를 이 전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상부에 별도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추 의원실 등에 따르면, 당시 조사본부 내부에서는 이 수사보고가 국방부 상부에 보고되면 기록 자체가 송부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조사본부로선 상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수사보고 형태로 임 전 사단장 혐의를 경찰에 전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조사본부 관계자들은 수사권을 가진 경찰이 임 전 사단장 등에 대한 혐의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 같은 수사보고를 첨부해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본부 관계자들은 최근 특검 조사에서 국방부의 외압 정황도 진술했다. 한 상급 관계자는 “(이 전 장관의 의중을 전달한)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의 요구대로는 (혐의자) 변경을 못하겠다는 얘기가 내부 회의에서 많이 나왔다”고 진술했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비롯한 다른 관계자들도 재검토 과정에서 박 전 보좌관으로부터 외압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박 전 보좌관은 조사본부 측에 재검토 안건 관련으로 45차례 가까이 연락을 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군 출신 전문가들은 이 수사보고가 국방부 상부의 외압 정황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평가한다.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는 “조사본부가 사건 관계인에 대해 자세하게 혐의점을 적어 경찰에 보낼 정도면 (임 전 사단장 등도) 사실상 혐의자에 준한다고 본 것”이라며 “결국 압박을 받은 조사본부가 (임 전 사단장 등을 혐의자로 특정해) 이첩을 하지 못하자 그에 준하는 효과를 주기 위해 수사보고를 편철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검은 조사본부로부터 해당 재검토 결과를 받은 경북경찰청이 임 전 사단장을 비롯한 해병대 상급 관계자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한 과정에 외압 정황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하고 있다. 이 전 장관 측 변호인은 이날 경향신문에 “국방부 조사본부는 장관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국방부 내부 부서”라며 “다양한 의견(장관 의견 포함)을 종합해 내린 국방부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를 장관이 최종 승인했다”고 밝혔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 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