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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트럼프가 피스메이커라면, 난 페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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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트럼프가 피스메이커라면, 난 페이스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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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분수령' 李-트럼프 정상회담
이 대통령 취임 82일 만에 첫 한미회담
회담 전 韓에 의구심 '트럼프 돌발변수'
마스가 프로젝트로 분위기 반전시켜
이 대통령, 동맹현대화 美 요구 선 긋기
美, 대만 유사시 한국의 역할 요구할 듯
관세협상 후속조치·농산물 개방 논의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뉴시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82일 만에 이뤄지는 첫 한미회담이다. 양 정상 간 첫 상견례 자리였지만, 회담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과 발언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면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다만 중국 부상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한미 동맹의 역할 변화'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이번 한미 회담의 의미는 작지 않을 전망이다.

양 정상은 이날 오후 백악관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회담에서 한미 조선 협력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지난달 말 한미 관세 협상 타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마스가 프로젝트를 첫 대화 의제로 올리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조선소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며 "한국에서 선박을 구매할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미국 인력을 활용해 한국 기업과 함께 선박을 건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조선 분야뿐 아니라 제조업 분야에서 르네상스가 이뤄지고 있으며 그 과정에 한국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주시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도 만나달라"며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만들어 저도 거기서 골프를 치게 해주고 세계사적으로 평화 메이커로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를 한다면 나는 '페이스 메이커’를 하겠다"며 한미 협력을 강조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친분과 (김 위원장을 만난) 판문점에 다시 갈 수 있다는 의향을 밝히며 "그렇게 하겠다. 그(김정은)를 만나길 기대하고 있고 관계를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을 언제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는 "올해 그(김 위원장)를 만나고 싶다"며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만나 북미대화에 나설 뜻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또 "든든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이 성장·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한미 동맹을 군사 분야뿐 아니라 경제 분야, 과학기술 분야까지 확장해 미래형으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며 이른바 동맹현대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소개했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에서 진행된 회담과 달리 회담 전엔 돌발 상황도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3시간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라며 "그런 상황에서 거기서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적으면서다. 회담 직전 전국에 추진 중인 '범죄와의 전쟁' 관련 조치에 대한 행정명령을 서명한 자리에선 SNS 글과 관련한 미 언론의 질문에 "지난 며칠 동안 한국의 새 정부가 교회를 수색하고 우리 군 기지에 들어와서 정보를 수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특검이 친위 쿠데타에 대한 사실조사를 한 것"이라며 "(압수수색은) 미군이 아니라 한국군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언론과의 질답이 길어지면서 당초 낮 12시부터 예정된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30분 정도 밀렸다. 회담 직전 SNS와 언론과 대화를 통해 한국 전반에 대한 의구심을 쏟아낸 것은 상대를 압박해 양보를 최대한 이끌어 내려는 트럼프 특유의 협상 전략으로 풀이된다.

비공개 오찬으로 이어진 회담에서 양국의 이해가 극명하게 엇갈린 의제는 동맹 현대화가 될 전망이다. 미국은 그간 주한미군 역할을 대북 억제에서 중국 견제로 확장하는 것은 물론 대만 유사 사태를 포함한 미중 충돌 시 한국이 역할을 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반면 우리 정부는 동맹 차원의 중국 견제에는 난색을 표해 왔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이륙 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 이륙 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 향하는 공군 1호기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전날 일본 도쿄를 떠나 워싱턴으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기자간담회을 열고 동맹 현대화와 관련해 "(주한미군) 유연화에 대한 요구가 있지만 우리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협상 상황이) 생각만큼 험악하지 않다"고 부연했지만 중국 문제를 바라보는 양국 간 입장 차이를 부인하진 않았다. 이 대통령은 또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는 필요하다"고 언급했는데, 미국이 사용해온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는 다른 표현이다. 주한미군 역할·규모 조정에 대한 양국의 기대가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대통령은 쌀, 쇠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 요구에 대해서도 "이미 큰 합의로 내용이 정해졌는데 쉽게 뒤집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외교에 친중·혐중이 어디 있느냐"며 한중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우리 외교 근간은 한미 동맹이고 한미일 안보·경제 협력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중국과 절연하고 살 순 없다"고 강조한 것이다. 동맹 현대화가 자칫 한중 관계 악화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게 이 대통령이 세운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보인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워싱턴=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