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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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계엄의 늪 헤매는 국민의힘
강성 당원 20%가 당의 운명 좌우
외연 확장 막히고 중도층 멀어져
변화 거부한 정당 살아남지 못해
지난 22일 충북 청주 오스코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에서 김문수(왼쪽), 장동혁 당대표 후보가 결선투표에 오른 뒤 인사하고 있다. 뉴스1 |
왜 이렇게 되었을까. 국민의힘의 이런 분위기는 일반 국민 다수의 생각과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대선 직후 실시한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의 비율은 15%였고, 탄핵에 다소라도 반대 입장을 보인 이들은 26%였다. 이들이 모두 ‘윤석열 어게인’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응답을 토대로 추산해 보면 최대 20% 전후의 유권자들은 이념적으로 매우 강한 보수 성향을 갖는 이들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지속된 한국 정치의 양극화 상황을 두고 볼 때 우리 사회의 이념적 분화가 극단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기존 연구를 보면, 정치적 관심이 높고 이념적으로 강성인 이들이 정치참여에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도 이념적으로 강성 보수인 이들이 많이 참여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극단주의가 당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복귀와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극우 유튜버가 사실상의 후보 면접을 보는 등 경선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것도 경선 투표에 참여한 이들이 전체 유권자의 이념 분포보다 우측으로 크게 치우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당 내부의 사정이겠지만, 이런 결과가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의 양당 구도에서 힘이 너무 한쪽으로 쏠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그들끼리 똘똘 뭉친 20%의 지지는 정당을 지키고 유지하는 데는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지만, 외연을 확장하거나 나아가 집권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이미 정치적 힘은 민주당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압도적인 의석으로 국회를 지배하고 있고, 방송법이나 노란봉투법 등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거리낌 없이 처리하고 있다. 또 이재명 대통령 역시 60% 전후의 안정적인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간다면 내년의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압승을 거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입법부, 행정부를 장악한 데 이어 지방정부도 민주당 일색이 될 가능성이 크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최근 조국·윤미향 사면으로 인한 지지율 하락에서 보듯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아주 견고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설사 이재명 정부에 불만을 갖는 경우라도 중도층은 물론 온건한 보수 성향의 유권자도 극단적 성향의 당원이 지배하는 정당을 그 대안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시대에 맞지 않고 자기반성도 없고 극단적 입장을 취하는 정당이 선거에서 유권자의 외면을 받는 건 당연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지나치게 한쪽으로 힘이 집중되는 결과가 생길까 걱정스럽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의 집중은 건강한 민주주의에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은 어쩌면 새로운 정치적 변화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거대정당이라고 해도 정당의 몰락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영국 자유당은 1906년 총선에서 397석을 얻어 156석에 그친 보수당을 압도하고 집권당이 되었다. 그러나 불과 18년 후인 1924년 총선에서는 겨우 40석을 얻고 소수 정당으로 전락했고 다시는 지지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18년 전이면 2007년이다.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500만 표 이상의 차이로 당선되었다.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153석의 과반의석을 얻었고, 사실상 같은 세력이었던 친박연대도 13석을 얻었다. 그때 이후 지난 18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보수 정당은 서서히 몰락해 갔다. 영국에서는 자유당은 몰락했지만, 보수당은 여전히 살아남았다.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당은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없다. 보수 정당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국민의힘이 그런 것 같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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