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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참사 트라우마에 삶 놓는 소방관들…구조 골든타임 놓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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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참사 트라우마에 삶 놓는 소방관들…구조 골든타임 놓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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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sus 10월29일 밤 10시15분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뒤 골목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30일 새벽 사고 현장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22sus 10월29일 밤 10시15분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뒤 골목에서 압사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30일 새벽 사고 현장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신 상담만 늘었을 뿐 트라우마의 가장 극단적인 결과인 자살 원인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습니다. 비슷한 죽음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동료들의 잇단 죽음 앞에 이창석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소방관 정신건강 관리 체계가 여전히 실효성이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참혹한 사고 현장을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이들을 위한 단기적인 정신 상담은 늘었지만, 실질적으로 그 위험성을 평가하고 더 많은 죽음을 막을 만한 체계적인 관리는 이뤄지지 못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 7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 수는 매년 두자릿수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25일 보면, 2019년부터 지난 8월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공무원은 모두 99명이었다. 한해 10~20여명이 세상을 등졌고, 올해는 지난 20일까지 모두 7명이 목숨을 끊었다. 이태원 참사 당시 투입됐던 남아무개(44) 소방장은 지난달 29일, 박아무개(30) 소방교는 지난 20일 각각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관이 겪는 극심한 트라우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며, 상담 건수는 증가하는 추세다. 소방공무원 대상 ‘찾아가는 상담실’ 이용자는 2019년 3만7732명에서 지난해 7만9453명으로 5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본격적인 치료가 필요한 소방관을 대상으로 하는 ‘마음건강 상담·검사·진료비 지원’도 최근 4년간(2021~2024년) 매년 8천건 안팎이었다. 남 소방장과 박 소방교도 목숨을 끊기 전 수차례 심리 상담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양적인 상담 증가에도 소방관 사망이 지속되는 배경에는 정신건강 관리와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 있다. 소방청은 찾아가는 상담실의 상담 결과를 외부 상담 위탁기관에만 남겨둘 뿐 내부적으로 추적·관리하지 않는다. 상담 이후 소방관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이 이뤄지지 못하는 셈이다. 소방관이 스스로 사직을 요청한 의원면직의 경우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900명에 이르지만, 이들은 모두 ‘자진 퇴직’으로만 분류돼 트라우마 등이 미친 영향을 알 수 없다. 자살 통계 또한 그 원인을 ‘추정’으로만 기록해 정확한 원인 없이 숫자만 관리한다. 소방청 관계자는 “자살은 특성상 원인 파악이 어렵고, 유가족이 순직 인정을 신청한 경우에만 자살과 공무수행의 인과성 여부를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순직이나 공무상 재해 인정도 쉽지 않다. 남 소방장은 사망 전 공무상 요양을 신청했지만 지난 6월 중순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참사 수습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2015년~2025년 6월)간 소방공무원 순직 인정은 23건에 그친다. 이창석 위원장은 “참혹한 현장에 투입돼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은 기록이 있더라도 숨지기 직전 개인사에 우선 관심을 두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위성곤 의원은 “상담 이후 퇴직이나 사망으로 이어진 사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퇴직 사유조차 알 수 없는 것은 제도의 큰 허점”이라며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을 지키는 일은 곧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인 만큼 상담·퇴직·사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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