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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제정하면 뭐하나… 전북교육청 '갑질 근절 훈령'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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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최초 제정하면 뭐하나… 전북교육청 '갑질 근절 훈령'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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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 교사들 피해 잇따라
언어폭력에 일방적 업무 지시
가해자 지목 교감은 교장 승진
해당 교감 “사실과 달라” 주장
교육청 “감사 결과 따라 조치”


전북교육청은 지난해 8월 전국 시·도교육청 가운데 최초로 갑질 근절 훈령을 제정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전북교육청 제공

전북교육청은 지난해 8월 전국 시·도교육청 가운데 최초로 갑질 근절 훈령을 제정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전북교육청 제공


전주 한 특수학교 교감, 반말 일삼고 휴가 신청 거부


전북교육청이 전국 시·도교육청 가운데 최초로 제정한 '갑질 근절 훈령'이 학교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최근 전주 한 특수학교 교감의 부당한 업무 지시와 지속된 폭언으로 교사들이 피해를 호소하면서다.

2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북지부 등에 따르면 2023년 A특수학교에 부임한 B교감은 이미 결재가 끝난 장애 학생 대학생활체험 활동과 관련해 행사 당일 아침 "택시 대신 버스를 이용하라", "인솔 교사를 줄이라" 등 일방적으로 계획을 변경하도록 지시했다. 교사가 "장애 학생이라 대중교통은 힘들다"고 설명했지만 교감은 묵살했다는 게 교사들 주장이다.

공개된 자리에서 교사들에게 호칭을 생략하고 이름만 부르거나 반말을 하는 등 언어폭력도 일삼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조퇴나 육아시간 사용, 가족돌봄휴가 등을 신청하면 "학기 말이라 안 된다", "그럴 거면 담임을 왜 맡았느냐"며 연기하거나 반대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한 교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구토·어지럼증·하혈 증상을 보여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전교조는 전했다. 또 다른 교사는 아예 사직서를 냈다. 이에 대해 B교감은 전교조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거나 상당 부분 과장됐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B교감은 입장문을 통해 "학사운영을 위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고, 사실과 다르다"며 "교사들이 심적 부담을 느꼈다면 죄송하다. 교육청에서 감사를 진행하면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B교감은 지난 8일 전북교육청이 발표한 올해 하반기 유·초·중등 교육공무원 정기 인사에서 교장으로 승진해 내달 1일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긴다. B교감은 갑질 의혹이 불거진 후 현재 학교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전국 최초 갑질 근절 훈령… "현장에선 효과 미미"



전북 전주 한 특수학교 교사들이 해당학교 교감의 갑질 피해를 호소하며 전북교육청에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교조 전북지부 제공

전북 전주 한 특수학교 교사들이 해당학교 교감의 갑질 피해를 호소하며 전북교육청에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교조 전북지부 제공


교육계에선 전북교육청이 갑질 근절을 위해 전국 최초로 훈령까지 제정했지만, 정작 학교 현장에선 그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최초'라는 성과만 내세우는 이른바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주장이다. 전북교육청이 지난해 8월 훈령으로 제정한 '갑질 근절과 상호 존중의 조직문화 규정'에는 △갑질 전담 책임관 지정 △갑질 예방교육 △상호 존중의 날 지정 등이 담겨 있다. 갑질 전담 책임관은 통상 교장 또는 교감이 맡는데 조직 내 부당한 행위를 막아야할 교감이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되는 모순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전북교육청이 2020년부터 5년간 전북교육청에 접수된 갑질 민원 232건 중 갑질로 인정된 사례도 단 6건(3%)에 불과했다. B교감에 대한 감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수경 전교조 전북지부 정책실장은 "특수교육 분야는 다른 직군에 비해 소수 직렬이다 보니, 문제를 제기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교사들 사이에 만연하다"며 "오랜 시간 참고 견디다 큰 용기를 내서 공론화한 만큼 교육청은 철저히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교감, 교장으로 승진… 내달 감사 착수


갑질 피해를 호소한 교사들은 A학교 정문 앞에서 매일 피켓 시위를 벌이며 B교감에 대한 철저한 감사와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내용이 담긴 탄원서엔 현재까지 교사·학부모 등 1,000명이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전북교육청은 내달 B교감에 대한 감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만 전북교육청은 "갑질 의혹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지난 13일 이전에 B교감에 대한 인사 발령이 이미 이뤄졌고, 아직 사실관계조차 파악이 안 된 상황에서 인사 결정을 번복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홍열 전북교육청 감사관은 "학교 현장에서 갑질 피해가 발생하면 전문가에게 즉각 상담받을 수 있도록 전북노무사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온라인 상담 창구를 운영하는 등 지원 체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며 "A학교 사안에 대해서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감사 결과에 따라 엄정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혜지 기자 foi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