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맘마미아!’ 공연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
막이 오르자 객석의 공기가 순간 달라졌다. 그리스 에게해를 닮은 푸른 조명이 무대를 감싸고 아바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저마다 어깨를 들썩였다. 2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맘마미아!’는 여전히 축제였다. 20여년 전 초연의 기억을 환기시키면서도 무대는 새삼스러울 만큼 생생했고, 배우들은 눈부신 에너지로 객석을 몰아붙였다. 시작부터 끝까지 노래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 그리고 마지막 커튼콜에서 극장 전체가 거대한 파티장으로 변하는 순간은 이 작품이 왜 세월을 넘어 반복해서 불려 오는지 그 답이 또렷이 드러났다.
2004년 초연 뒤 21년 동안 23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비밀은 역시 음악이다. 아바의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빛을 잃지 않는다. ‘댄싱 퀸’이 울려 퍼지면 객석은 단숨에 젊음으로 환해지고, ‘더 위너 테이크스 잇 올’은 단순한 팝송을 넘어 한 여인의 고백처럼 다가온다. 이미 귀에 익은 히트곡들이 극적 맥락 속에서 다시 불릴 때, 관객은 노래 속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캐릭터의 삶과 감정을 끌어올리는 서사라는 점에서, 음악은 ‘맘마미아!’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뮤지컬 ‘맘마미아!’ 공연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
이야기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엄마 도나(최정원∙신영숙)와 딸 소피(루나∙최태이), 그리고 오랜 친구들과 옛 연인들이 엮어내는 관계의 망은 특별하지 않기에 더욱 공감을 산다. 누군가는 소피의 설렘과 방황에서, 또 누군가는 도나의 회한과 고단함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 초연 당시 다소 파격적으로 읽히던 모녀의 서사는 이제 부모와 자식의 세대 교차를 비추는 따뜻한 가족극으로 다가온다. 시대와 함께 읽는 방식이 변해온 것도 이 작품이 가진 생명력의 증거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서구 엘지(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막을 올린 13번째 시즌(10월25일까지)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캐스팅이다. 무려 1천회 이상 도나를 연기한 최정원, 힘 있는 가창으로 무대를 장악해온 신영숙이 여전히 중심을 지키고 있다. 샘 역에는 김정민과 장현성, 해리 역에는 이현우와 민영기, 여기에 2023년 새롭게 합류한 송일국이 빌 역으로 이름을 올리며 화제를 더한다. 한 무대에서 만나기 힘든 배우들이 모인 만큼, 공연은 익숙함과 신선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뮤지컬 ‘맘마미아!’ 공연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
‘맘마미아!’는 무엇보다 관객과 함께 완성되는 작품이다. 커튼콜에서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장면은 이제 하나의 의식이 됐다. 부모와 자녀, 연인과 친구가 나란히 어깨를 흔드는 그 순간, 공연은 극장을 넘어 인생의 한 장면으로 확장된다.
한국 뮤지컬계에서 이 작품이 차지하는 자리 역시 크다. 초연 당시 단기간에 20만명을 모으며 뮤지컬 대중화의 문을 열었고, 서울 이외 지역 장기 공연의 가능성까지 입증했다. 세계 무대의 여정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1999년 런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 초연 뒤 올해 26주년을 맞아 웨스트엔드 역사상 세번째로 오랜 기간 무대에 오른 작품으로 남았다. 브로드웨이에서도 14년간 5773회 공연을 기록하며 브로드웨이 역사상 아홉번째 장기 공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뮤지컬 ‘맘마미아!’ 공연 장면. 신시컴퍼니 제공 |
‘맘마미아!’는 눈을 사로잡는 거대한 장치나 반전에 기대지 않고, 평범한 인간관계의 진실과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로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다. 낯익은 노래가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오래된 선율 속에서 또 다른 내일을 만난다. 단순한 공연을 넘어, 세대를 뛰어넘고 잇는 축제이자 위로의 의식으로 자리매김한 까닭이다. 20~30대가 주관객층인 국내 뮤지컬 시장에서 드물게 40대가 25.7%로 예매 1위(놀티켓 기준)를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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