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최근엔 매운맛을 전면에 내세운 신제품들이 속속 등장하며, 업계는 이를 내수 회복의 돌파구로 삼고 있다. 동시에 미국발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라면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다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 매운맛, 불황 심리·SNS가 만든 돌파구=경기가 나쁠수록 매운맛이 잘 팔린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반복돼온 공식이다. 억눌린 소비자들이 저렴하면서도 강한 자극을 통해 일시적 해소감을 얻기 때문이다. 매운맛의 주성분인 캡사이신이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해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제 이러한 현상이 놀이문화로 확장됐다. 유튜브와 틱톡에서 '매운맛 챌린지'가 콘텐츠로 소비되며, 신제품은 출시 직후부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매운 라면을 먹는 장면을 공유하는 것이 인증과 도전 과제가 되고, 기업은 대규모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자발적 홍보 효과를 얻는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먹는 것 자체를 콘텐츠로 즐긴다"며 "매운맛은 놀이이자 도전이 됐다"고 말했다.
놀이문화 확산은 곧 신제품 전략으로 이어졌다.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으로 세계적 인기를 얻은 이후 농심, 오뚜기, 팔도 등도 매운맛 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농심은 기존 신라면보다 두 배 매운 '신라면 더 레드'를 출시해 보름 만에 500만 봉지를 완판한 뒤 정식 제품으로 전환했다. 오뚜기는 열라면을 변주한 '마열라면'을 내놨으며, 최근에는 스코빌지수 7500의 '더핫 열라면'을 선보였다. 이는 오뚜기 제품 가운데 역대 가장 매운 라면이다. 업계 전반의 더 맵게 전략은 침체된 내수를 자극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라면업계가 매운맛 신제품에 속도를 내는 데는 대외 변수도 작용한다. 지난해 한국 라면 수출액은 12억5000만 달러(약 1조8000억원)에 달했고, 불닭볶음면은 삼양식품 매출의 77%를 해외에서 거둘 정도로 글로벌 히트작이 됐다.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라면업계가 내세운 차별화 포인트가 곧 매운맛이다. 한 관계자는 "내수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려면 자극적이고 화제성이 큰 제품이 필요하다"며 "매운맛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카드"라고 강조했다.
◆ 관세 변수 속 다시 주목받는 내수= 이는 최근 라면업계의 상황도 뒷받침한다. 지난 7월 농수산식품 대미 수출액은 5437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1.6% 줄었으며, 라면은 17.8%, 과자류는 25.9% 감소해 낙폭이 두드러졌다. 업계는 미국의 상호관세 불확실성으로 상반기에 물량이 앞당겨진 영향이라고 해석하지만, 보호무역주의 강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긴장감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과 함께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 라면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요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결국 라면업계는 내수와 수출의 균형 전략을 다시 꺼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해외 시장이 여전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국내 소비자들을 붙잡는 일이 중요해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불황기에 소비자가 가장 쉽게 반응하는 키워드가 바로 매운맛"이라며 "국내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매운맛 라면을 내놓는 것은 내수 방어와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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