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변신하는 바로크…잘츠부르크에서 본 비발디의 새 얼굴

한국일보
원문보기

변신하는 바로크…잘츠부르크에서 본 비발디의 새 얼굴

속보
11월 산업생산 0.9% 증가…소매판매 3.3%↓·투자 1.5%↑
[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화제 오페라 '호텔 메타모포시스'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오페라 '호텔 메타모포시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제공

오페라 '호텔 메타모포시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제공


지난달 18일부터 열리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세계적 음악 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올해로 105주년을 맞은 이 축제는 음악가와 문학가, 건축가가 함께 모여 창단한 만큼 극장의 건축 미학부터 남다르다. 6주가 넘는 긴 기간 연극, 오페라, 콘서트, 리사이틀, 음악극 등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무대들이 이어진다. 축제의 중심은 빈 필하모닉의 콘서트보다 오페라 무대다. 오랜 역사만큼 보수적일 것 같지만, 기발한 기획과 신선한 연출이 축제의 위상을 지켜온 비결이다. 올해 특히 화제를 모은 것은 바로크 오페라였다.

무대에 오른 작품은 베르디 '맥베스', 도니제티의 '마리아 스투아르다', 라모의 '카스토르와 폴룩스', 헨델의 '줄리오 체자레', 그리고 비발디의 '호텔 메타모포시스'다. 시대를 대표하는 메조 소프라노이자 바로크 레퍼토리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겨온 예술감독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영향이었을까. 세 명의 카운터테너가 불꽃 튀는 열연을 펼친 '줄리오 체자레'도 인상적이었지만, 비발디의 '호텔 메타모포시스'는 감히 '역대급 프로덕션'이라고 할 만한 감탄과 충격을 남겼다. 21세기에 바로크 음악은 어떤 형태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 답을 보여준 무대였다.

바로크 오페라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재현하는 데서 출발해 신화나 영웅 이야기를 다룬다. 캐릭터 감정 변화의 진폭은 크지만 느슨한 줄거리와 반복적 선율로 인해 오늘날 청중에게는 몰입이 쉽지 않다. '줄리오 체자레' 역시 최고의 성악진과 21세기의 전쟁을 배경으로 삼은 무대 연출이 근사했지만, 헨델의 인기 있는 오페라임에도 극 흐름에 맞춘 편집과 축약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연출과 결합, 형식 확장하는 바로크 오페라



오페라 '호텔 메타모포시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제공

오페라 '호텔 메타모포시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제공


오페라 '호텔 메타모포시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제공

오페라 '호텔 메타모포시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제공


반면 '호텔 메타모포시스'(변신 호텔)는 앞에서 언급한 바로크 오페라의 한계를 확실하게 돌파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작품은 비발디의 정규 오페라 목록에는 없다. 비발디의 오페라와 기악곡에 등장하는 아리아와 합창, 연주곡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구성한 '파스티초(Pasticcio)' 형식의 극이다. 연출가 바리 코스키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21세기 '호텔 메타모포시스' 투숙객의 이야기로 엮었다.

투숙객 중에는 외모와 성형에 집착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중독된 나르시스도 있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신화는 여성 피규어와 사랑에 빠진 중년 남성의 이야기로 그려졌다. 장면 전환은 하우스 키핑을 위해 등장한 호텔 직원들이 무대를 정비하는 연기로 자연스럽게 이뤄졌고, 바로크 오페라 속 레치타티보(말하듯 노래하며 전달하는 대사)는 베테랑 연극 배우가 맡았다. 색채감 넘치는 의상을 입고 요정이 돼 역동적인 춤을 추는 무용수들, 발광다이오드(LED) 화면과 그래픽을 이용해 서사를 대신한 무대 미술은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전히 무대 위에서 현역임을 입증한 체칠리아 바르톨리, 카운터테너 필립 자루스키, 메조 소프라노 레아 드상데레 등 성악가들의 호연은 기발한 발상을 완성도로 끌어올렸다.

바로크 음악은 고전과 낭만시대가 완성하고 발전시켜온 엄격한 클래식 음악 형식에서 오히려 자유롭다. 음악의 역동성과 담백함, 변화무쌍한 드라마, 즉흥 연주를 중시한 특성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잘츠부르크에서 20년 전 지휘자 마크 민코프스키의 상상에서 출발한 라모의 '상상교향곡' 앨범을 떠올렸다. 라모의 오페라와 발레 음악에 등장하는 서곡, 춤곡, 기악곡을, 그 시대에는 없었지만 현대인에게는 익숙한 교향곡 형식 안에 투영한 일종의 파스티초였다.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한 장의 앨범으로 듣고 보니, 라모가 왜 프랑스 최고의 관현악 작곡가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즘 바로크 음악가들은 주제와 캐릭터 분석에 따라 서사를 재구성해 자신들만의 프로그램을 만든다. 음악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연출과 결합해 확장하는 것이다. 덕분에 21세기 바로크 음악은 오페라, 연극, 음악극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