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국민 위로송 '나는 반딧불' 부른 황가람·만든 정중식
올 상반기 로제 '아파트'보다 재생 수 많아
"세상에 처음 '허락'받은 것 같아요"
편집자주
함께 도전해 세상의 편견을 지우고 변화를 이끈 대중문화 단짝들 인터뷰.국민 위로송 '나는 반딧불'을 부른 황가람(왼쪽)과 이 곡을 작사, 작곡한 정중식. 요즘 순위가 내려갔어 저 진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두 가수는 사진 촬영 때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8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소재 정중식의 작업실에서 황가람이 정중식의 멱살을 쥐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췌장암 4기인데 저도 (황)가람이처럼 빛날 수 있겠죠?'
유튜브에 올라온 가수 황가람(40)의 '나는 반딧불' 노래 영상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작성자는 '가람이의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이 댓글을 본 황가람은 초등학교 동창들에 익명으로 댓글을 단 친구를 수소문했다.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친구를 "꼭 만나고 싶어서"였다. "결국 못 찾았어요. 그런데 더 못 찾겠더라고요. 혹시나 마음 아픈 일이 생겼을까 봐요." 이렇게 말한 황가람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순식간에 구겨졌다.
좋은 노래엔 수많은 사연이 쌓이기 마련. '전 나이가 54세이고 정말 사랑하는 13세, 16세 두 딸과 항상 고마운 아내가 있는 가장입니다. 요즘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데 너무 잘 안되고 힘듭니다(@tvha****)' '건설 현장 점심시간 종이박스 깔아놓고 잠깐 누웠는데 이 노래 듣고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어버렸습니다(@cjy****)'. '나는 반딧불' 가창 영상이 올라온 곳은 때를 가리지 않고 열려 있는 고해소가 됐다. 사람들은 저마다 겪은 삶의 역경을 이 노래 영상에 너도나도 댓글로 고백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들을 위로한 덕분일까. 멜론·벅스·스포티파이 등 국내·외 음원 플랫폼 9곳의 음원 소비량을 집계하는 써클차트를 확인해 보니, 1~6월 '나는 반딧불'의 재생수(스트리밍·4위)는 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부른 '아파트'(5위)보다 많았다. 아이돌 댄스 K팝이 아니면 외면받기 십상인 요즘 음악 시장에서 무명 가수의 발라드곡이 이렇게 사랑받기는 이례적이다. 황가람 혼자 이룬 성과는 아니다. 정중식(42). '나는 반딧불'을 작사·작곡하고 2020년 먼저 이 곡을 발표한,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7'(2015) 톱4 출신 밴드 중식이의 보컬이 숨어있던 공신이다.
두 사람은 음악적 동지다.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르는 모험을 했고 결국 뒤늦게 빛을 봤다.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담담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황가람의 목소리와 무너진 삶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정중식의 소박한 노랫말. 발라드와 록, 주력하는 음악 장르가 다른 두 사람이 각자의 부족함을 채워 시너지 효과를 냈다. 괜히 '환상의 콤비'가 아니었다. 지난 8일 서울 중곡동 정중식의 작업실. "'나는 반딧불'은 애초 두 명이 필요한 노래였던 것 같아요." 황가람이 이렇게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정중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개똥벌레였다"라고 한 두 무명 가수가 '반딧불'이 된 비결이었다. 다음은 한국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함께 언론 인터뷰에 나선 두 사람과 나눈 일문일답.
국민 위로송 '나는 반딧불'을 부른 황가람(아래)과 이 곡을 작사, 작곡한 정중식. 두 가수는 '나는 반딧불'은 애초 둘이 필요했던 노래라고 말했다. 하상윤 기자 |
'나는 반딧불' 만든 중식이가 '죽일 놈' 된 속사정
-저작권료 수입 쏠쏠할 거 같은데요?
중식: 제 인생에서 번 가장 많은 돈이 통장에 찍혔죠. 올 초 한 달에 많게는 경차 풀옵션 비용(1,800만~2,000만 원대) 정도요. 하지만, 지금은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기 그렇고요. 요즘 주위에 '돈 빌려달라'는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요. 며칠 전엔 매니저 역할 해주고 있는 프로듀서한테까지 돈 빌려달라고 찾아왔더라고요.
-가창자인 가람씨한테 가는 저작권료는 거의 없을 텐데, 묻혔던 노래를 다시 불러 심폐 소생시켰는데 밑지는 기분이 들진 않던가요? (음악 저작권은 작사, 작곡, 편곡 등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한다. 가수는 저작인접권자로 따로 분류돼 실연료를 받는다.)
가람: 전혀요. 저작권료와는 다른 가치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행사로 벌잖아요. 예전엔 행사를 거의 하지 못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그래도 행사비가 10배는 올랐고요. 저작권료보단 적지만 실연료도 받고요. 중식이 형이 따로 보약도 지어주고요(웃음). 자주는 아니지만 형이 전화해서 제 건강 어떠냐고 물어보는 데 그게 할 말 없어서 하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힘이 되더라고요. 중식이 형이랑 전 따로가 아니라 팀이라 생각하거든요.
중식: 가람이 저작권료 못 받는다고 저 죽일 놈 됐잖아요(웃음).
정중식 카카오톡 프로필. 양승준 기자 |
-반대로 중식씨는 본인이 부른 노래는 주목받지 않고 가람씨가 부른 노래가 사랑받아 서운하진 않았나요?
중식: '아니, 왜 내가 불렀을 땐 안 들어주고' 이런 생각도 했죠. 그런데 '나는 반딧불'은 징징대는 사람이 부르면 안 됐던 노래였어요. 저 '징징이'거든요. "아 알바 하기 힘들어"라며 곡 쓰고. 거기다 제 화를 얹어 부르고요. 아무리 어렵게 살았어도 개인적인 화를 지우고 불러야 대중성을 얻는 건데 그걸 가람이가 해준 것 같아요. 제가 부를 때보다 가람이가 이 노래 박자를 좀 늦게 타면서 부르거든요. 그렇게 꾹꾹 눌러주며 부르니 듣는 분들이 더 몰입하는 것 같고요. (21일 정중식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확인해 보니 '나의 노래가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야'란 문구가 걸려 있었다.)
녹음실에서 노래하는 황가람. 황가람 제공 |
2015년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7'에서 중식이가 노래하고 있다. Mnet 제공 |
"외롭겠구나" 마음 통한 두 청년
-접점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친해졌죠?
가람: 오디션 프로그램 '오빠시대'(2023·MBN)에서 중식이 형을 처음 만났어요. 오디션 하면서 형이랑 쓰는 대기실은 달랐지만 촬영 끝나고 같이 술을 먹고 작업실도 오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형이 해주는 말들이 위안이 되더라고요. 서른여덟까지 음악 관련 스태프로서만 일하다가 일 끝나고 혼자 있을 때 '내가 노래하는 게 좀 더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종종 했거든요. 그런데, 중식이 형이 '그냥 노래해'라고 직언을 해주는 거예요. 갈증을 느끼고 있는 지점을 콕 짚어줘 대화가 잘 통하더라고요. 날 이해해 주는 만큼 상대에 대한 마음의 문이 열리잖아요.
중식: '슈퍼스타K7'(2015·Mnet) 톱4에 오른 뒤 '오빠시대' 오디션에 나가니 출연자들이 먼저 다가와 아는 척을 해주더라고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아이고 '슈스케' 출신이 어쩌다 여기까지 나왔어' 식의 짠한 시선도 느껴졌거든요. 그때 가람이는 아는 척을 안 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지나치고 난 뒤 가람이가 노래를 부르는데 기존 출연자들과는 목소리,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청량하다랄까요. 그때 '쟤는 뭐가 돼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호기심이 생긴 상황에서 만나 가람이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듣고 이해하게 됐죠. '되게 외롭겠구나' 싶으면서요. '딱 노래해야 하는 친구인데 참 쓸데없이 사업을 하고 있구나'란 생각도 하면서요.
-어떤 사업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가람씨는?
가람: 음악 관련 영상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소속사 대표님을 업자 대 업자로 만났죠. 그때 소속사 대표님이 저를 보고 다른 가수 노래 커버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왜 이 사람이 가수를 안 하고 있지?'란 생각을 했다면서요. 당장 계약하자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회사 식구들과 약속한 게 있어서 1년 동안은 뭔가를 좀 해야 한다'라고 사양했죠. 그때가 서른여덟이었거든요. 그런데 진짜 딱 1년 지나 사장님한테 다시 연락이 온 거예요. 고민하다 계약했죠.
-책임감이 강한 편이군요.
가람: 같이 하는 일, 함께 즐거워야죠. 저 포함 8명인 팀('동네 청년')이 있는데 그 멤버들 대부분 20년 넘게 같이 했어요. 고1 때부터 함께 한 친구와는 같이 쓰는 통장도 있고 금융인증서 비밀번호도 공유하고요(웃음).
중식: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가람이에 대한 믿음이 대단하더라고요. 처음엔 사람에 둘러싸인 가람이를 오해하기도 했는데, 만나 보니 '내가 동생이었으면 가람이한테 의지했겠다' 싶더라고요(웃음).
황가람의 옛 지하 작업실. 황가람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
회를 썰고 있는 정중식. 2015년 Mnet '슈퍼스타K7'에서 탈락한 뒤 그는 서울 망원동에 있는 참치집에서 다시 밥벌이를 시작했다. 정중식 제공 |
주식은 냉동 번데기, 잠은 화장실 라디에이터 옆...따로 똑같이 산전수전
4년 전, 정중식은 집이 없었다. 잠은 작업실에 텐트를 치고 잤다. 주식은 번데기였다. 2㎏ 냉동 번데기를 사 하루에 한두 번씩 끓여 먹으며 배를 채웠다. 청년 시절, 그의 일터는 지하였다. 어두운 지하철 터널을 돌아다니며 통신 장비를 설치했다. 공사장 막일부터 발 마사지까지 아르바이트까지. "나는 아직 살아 있죠 무너진 건물 당신 발밑에..." '여기 사람 있어요'(2014)란 노래엔 정중식의 고된 밥벌이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황가람의 청춘도 정중식과 비슷했다. 가수가 되기 위해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황가람은 한겨울 공용화장실 라디에이터 옆에서 쪽잠을 자며 147일 동안 노숙을 했다. 2박 3일 동안 신약 임상실험에 참여하고 노후 경유차 매연저감장치 판매 영업을 하며 돈을 벌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한순간에 미워지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노래를 포기 못 했죠." 이렇게 음악을 좇았지만, 황가람은 마흔을 앞두고 "아르바이트보다 돈이 안 되는 이 평생의 업을 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란 고민으로 방황했다. 2021년 '얼마쯤에 내 꿈이 포기가 될까'란 곡을 쓴 배경이다. 이래서 찰떡궁합이라고 하는 걸까. 정중식은 황가람이 쓴 '얼마쯤에 내 꿈이 포기가 될까'에 유독 끌렸다. 결국 '오빠시대' 본선에 진출한 10여 명의 참가자를 모아 리메이크를 주도하고 이 곡을 다시 불렀다. '산전수전'과 '위로'는 두 사람의 공통된 음악적 밑거름이자 방향이었다.
-음악을 하기 위해 살아온 길이 비슷해 동질감을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중식: 음악을 하면서 서로의 삶에 닥친 문제점들을 비슷하게 풀어왔던 사람들로서의 공감대가 컸어요. '힘들었을 때 넌 그렇게 풀었어? 난 이렇게 풀었는데' 하면서요. 다만,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달랐던 것 같아요. 가람이는 온몸으로 내 주변 사람들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 고통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이겨내 왔다면, 전 회피했거든요. 술 먹으며 방황했고요.
가람: 중식이 형이 회피했다고 하는데, 전 오히려 중식이 형이 정면 돌파를 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노래하기까지 오히려 빙 둘러왔죠.
가수 황가람(왼쪽)과 정중식이 8일 서울 광진구 중곡동 작업실에서 함께 얘기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
"나는 반딧불은 애초 두 명이 필요한 노래"
-그렇게 다른 둘이 음악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낸 비결은 뭘까요?
가람: 재즈부터 블루스까지 정말 다양한 장르의 곡을 불러 봤거든요? 제 목소리가 어떤 스타일의 곡에 가장 잘 맞는지 알고 싶어서요. 100곡 넘게 작곡도 하고요. 지난 3일 낸 신곡 '아문다'도 물론 좋지만, 거짓말 한 톨도 안 보태고 중식이 형이 만든 노래를 부를 때 제일 저한테 딱 맞는 곡을 만난 느낌이에요. 생활감 묻어나는 중식이 형 노랫말이 제 목소리랑 잘 맞는다랄까요? 저도 빙 둘러서 표현하는 것보다 무게 잡지 않고 솔직하게 풀어놓는 노랫말을 좋아하거든요. 지난겨울에 동네 치킨집에서 중식이 형과 돈가스 시켜 맥주를 먹으면서 주고받은 얘기가 있어요. '나는 반딧불'은 애초 두 명이 필요한 곡이었던 것 같다고요. 형도 저도 혼자서는 안 되고요. 그래서 '나는 반딧불'은 중식이 형이랑 같이 만든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형은 치킨집에서 돈가스 시켜 먹는 이상한 형이기는 해요(웃음).
중식: 7월에 '헬로'란 신곡을 냈는데 안 그래도 (유튜브 영상) 댓글에 '이 노래도 가람이가 부르면 될 것 같은데'란 글이 달렸더라고요. 저도 그런 생각 했거든요. 사실 요즘 가람이보다 가람이 소속사 대표님하고 전화 통화를 훨씬 자주 해요. 곡 요청 때문인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가람이 소속사 대표님이 사람 욕심은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웃음). 노래가 때를 잘 만난 거 같기도 하고요.
가수 황가람이 2월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울면서 말하고 있다. tvN 영상 캡처 |
① 불안하고 ② 반전의 여지가 없는 시대가 만든 '나는 반딧불' 신드롬
-때를 잘 만났다는 게 무슨 뜻이죠?
중식: 안팎으로 너무 어수선하고 경기가 안 좋잖아요. 어느 때보다 불안한 시대고요. 그러니 우울해질 수밖에요. 어려운 상황에도 '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란 노랫말에 위로를 받은 게 아닐까 싶어요.
가람: 반전의 여지가 없는 세상이 된 탓도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엔 부모님이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소 팔아 자식들 교육해 자식들은 다른 삶을 살길 바랐던 거잖아요. 그걸 삶의 반전이라고 여겼고요. 그런데 요즘엔 젊은 세대의 출산율이 낮은 게 반전의 여지가 없는 사회라 느끼고 이 불행을 내 세대에서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반전의 여지가 사라진 세상인 줄 알았는데 '나는 반딧불'을 듣고 '그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고 꿈꾸게 돼서 많이들 들어주시는 게 아닐까요? 반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실 전 복권을 안 사요. 당첨을 기대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반전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요. 제 반전의 여지는 음악이었거든요.
-'나는 반딧불' 가사를 중식씨가 썼다는 걸 알고 놀랐어요. 그간 '아이를 낳고 싶다니' '여기 사람 있어요'처럼 세태를 비판하는 곡을 주로 썼잖아요.
중식: '아이를 낳고 싶다니' 같은 곡들은 제가 20대 때 썼잖아요. 지금은 40대고. 늙은 거죠(웃음). 언젠가부터 돈 없다고 징징거리는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더라고요. 동정만 팔면 한계가 있잖아요. '나는 반딧불' 노랫말을 쓰게 된 진짜 계기는 사실 '바닥에 누워'(2016)란 곡 때문이에요. '몇 달 동안 난 누워있었지'로 시작하는 노래인데, 진짜 제가 이 신세를 못 벗어날 거 같은 거예요. 그러다 '스스로에게 상을 주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려면 저에 대한 기준을 낮춰야 하잖아요.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고 절 다독이며 칭찬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는 반딧불'을 쓰게 됐죠. 와, 이렇게 속마음을 얘기하니 진짜 오랜만에 소주 없이 술 마시고 있는 것처럼 편하게 가람이랑 대화하는 것 같네요.
-중식씨와 달리 가람씨는 '나는 반딧불' 속 가사 '개똥벌레'를 '개, 똥, 벌레'라고 뚝뚝 끊어 부르더라고요?
가람: 개의 똥 같은, 그러니까 벌레 중에 '상벌레'란 느낌으로 '이만큼이나 하찮다'라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벌레 같다'란 생각 많이 했거든요. 녹음하면서도 많이 울었고요. '한참 동안 찾았던 내 손톱(초승달), 누가 저기 걸어놨어'란 대목에선 최대한 얇은 목소리를 내 불렀고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허무함을 살리고 싶어서요. 제가 진짜 노래 많이 불렀거든요? 그런데 '나는 반딧불'은 아직도 노래 부르기 전에 떨려요. 틀릴까 봐요. 그만큼 이 곡이 저한텐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나는 반딧불'로 활동하다 보니 이런 곡도 쓰게 되더라고요. 곡을 음원으로 정식 발매하지 않고 유튜브에만 영상으로 올린 노랜데요. '다 맞는 말로 상처 주기보다 그냥 네 편 들어줄게'란 내용이에요. 잘 때 머리맡에 항상 노트를 놔두거든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이런 가사가 떠오르더라고요.
음치 수준이었던 가수 지망생의 인생 역전
-가람씨 유튜브 '동네 청년'에서 찾아보니 어려서 정재욱의 '잘가요'를 부르는데 고음 '삑사리' 나고 음정 안 맞고 거의 음치 수준이던데요. 어떻게 가수를 꿈꿨나요?
가람: 고1 때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거든요. 심지어 노래 잘하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연습 1년 하고 테이프로 녹음했던 거고요. 태권도 하다 다쳐 왼쪽 정강이 네 동강이 난 다음에요. 제가 특별하게 잘하는 건 없어도 운동도 공부도 하던 건 대부분 평균은 했거든요? 그런데 노래를 정말 못 부르는 거예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그때부터 파고들었죠. 못한다고 꿈을 못 꾸는 건 아니잖아요(웃음).
처음엔 노래를 글로 배웠어요. 영어로 된 책 '보컬로지' 구해서 친구한테 번역 부탁해서 읽고요. 내가 노래를 못하는 건 '물리적으로 기본이 안 돼서다'란 생각에 하나씩 해결해 보자는 마음이었죠. 남 노래 바이브레이션 개수까지 세 따라 불러보고요. 그렇게 노래 연습을 하다 교회 찬양팀에서 그룹 여행스케치의 이선아 선배님을 만났어요. 스무 살 때쯤요. 그때는 노래를 제법 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였거든요. '네가 노래 잘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이런 질문을 선배님이 던지면 제가 그 이유를 고민하고 그랬죠. 2009년쯤인가엔 절 박효신 선배님 콘서트에도 데려가셨고요. 정말 고마운 분이죠.
-가람씨랑 얘기를 하면 할수록 삶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중식씨가 부른 '얼마쯤에 내 꿈이 포기가 될까'란 가사를 가람씨가 썼더라고요.
가람: 그 노래 만들 때가 제일 힘든 시기였어요. '진짜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싶었거든요. 147일간 노숙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그때가 제겐 그렇게 힘든 시간이 아니었어요. 147일은 제 40년 인생에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이기도 하고요. 마흔을 앞두니 제가 살아온 방향에 의심이 들더라고요. 온 세상이 (음악)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만 못 알아듣는 것 같았고요.
황가람이 무주군수로부터 받은 명예군민증. 무주에선 반딧불 축제가 매년 열린다. 황가람이 '나는 반딧불'로 무주를 널리 알린 공을 인정받아 군민증을 받았다. 정중식 SNS 캡처 |
정중식을 객석에서 응원하는 사람들. 정중식 SNS 캡처 |
"그렇게 놀아야 다음에 또 불러주니까요"
정중식이 '나는 반딧불'을 만들 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주판 '여수 밤바다'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무주 반딧불 축제'를 노려 가사에 대놓고 무주도 넣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정중식은 9월 무주에서 열릴 반딧불 축제 주최 측으로부터 섭외를 받았다. 황가람은 무주군수로부터 명예 군민증과 감사패를 받았다. "(무주에 내려가서 군수님 만났을 때) 내가 계속 전화했잖아." 인터뷰가 끝난 직후 두 사람은 '나는 반딧불'과 무주에 얽힌 사소한 얘기를 티격태격 주고받았다. 꼭 형제 같았다.
정중식이 쓴 책 '도마에서 바다까지' 일부. 그는 책에 '당근 마켓을 보면 내가 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있다'라고 썼다. 양승준 기자 |
-중식씨는 책 '도마에서 바다까지'에서 '날 선 회칼과 번뜩이는 칼날이 관중의 눈빛과 닮았다'라고 썼더라고요. 무대에서 항상 신나게 놀아 이렇게 관객을 두려워하는 줄 몰랐어요.
중식: 두렵죠. 지방으로 가면 더 냉정하게 바라보시고요. 무대에서 신나게 노는 건 관객분들에 무엇인가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증명해야 다음에 또 불러주겠지' 싶어 미친 듯이 하게 되는 거죠. 오랫동안 공연을 하다 보니 이제 허리도 아프고 그러면서 쓰는 노래 장르도 좀 달라지고요.
황가람이 일과 행복에 대해 쓴 메모. 황가람 SNS 캡처 |
황가람이 쓴 책 '나는 반딧불' 일부. 양승준 기자 |
-반대로 가람씨는 책 '나는 반딧불'에 '제 성공은 10년 전에 이미 이뤘다'라고 썼고요.
가람: 100곡 넘게 작곡했을 때예요. 상업적 성과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제 작업물이 모두 실패작이 되는 건 아니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반딧불'이 사랑을 받으니 그간 계속 거절당하던 제 목소리가 세상에 처음으로 허락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서로가 어떤 가수로 남았으면 싶나요?
가람: '내가 해보고 싶었던 모험을 저 사람이 대신 해 주고 있네'란 얘기를 듣는 가수요. 반전의 여지를 열어주는.
중식: 음악으로 계속 먹고살 수 있는 사람요. 가람이가 '언젠가 객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잖아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