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일본 도쿄 신주쿠 한 중대형 슈퍼마켓에서 진열대에 쌀이 5㎏당 최대 5천엔(세금 포함)에 팔리고 있다. 홍석재 기자 |
지난 20일 일본 도쿄 신주쿠 한 중대형 슈퍼마켓에서 ‘반값 비축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슈퍼마켓 쌀 진열대에는 비축미와 일반쌀을 섞은 ‘블렌드쌀’ 20여개가 5㎏당 3천엔대에 팔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이바라키, 아키타, 홋카이도 같은 지역에서 갓 나온 쌀들이 최대 5천엔(4만7천원) 넘는 값에 판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달여 전 같은 자리에 ‘사토노고항’(시골밥)이라는 이름으로 5㎏당 2천엔(1만9천원) 안팎의 정부 비축미가 쌓여 있었지만, 이날은 반값 쌀을 판매하는 자리가 치워진 모습이었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부터 두배 가량 급등한 쌀값을 잡기 위해 내놨던 ‘반값 비축미’ 대책이 반짝 효과에 그치는 모습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1일 “정부가 쌀값 억제 정책으로 시작한 ‘반값 비축미'의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쌀값을 끌어내리기 위해 비축미 28만톤 방출 계획을 세우고, 이온·이토요·패밀리마트 같은 중·대형 오프라인 매장뿐 아니라 라쿠텐그룹·라인야후 등 온라인 유통업체들과 계약을 맺었다. 앞서 3∼4월에도 비축미 31만톤을 방출했지만 효과를 내지 못하자, 기존 쌀 유통에 관여했던 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연합회(JA)를 배제하고 중·대형 소매업체들과 직접 거래하는 극약 처방을 했다. 6월 한때 5㎏당 쌀값이 3천엔대로 떨어지면서 효과를 내는 듯 했다. 하지만 쌀값은 지난달 하락세가 멈춘 뒤, 이달 들어 되레 오름세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유명 브랜드쌀값은 이미 지난 6월말부터 4천엔대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값싼 비축미가 대량 판매되면, 재고가 쌓인 브랜드쌀값도 내려갈 것이란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월말 일본 도쿄 슈퍼마켓에서 정부 비축미가 2천엔 초반(세금 포함)에 팔리는 모습. 사진 홍석재 기자 |
쌀값 하락을 견인하던 비축미 유통이 사실상 멈춰섰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비축미 보관 창고에서 출하와 품질 검사, 배송 트럭 배차 등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면서 20일 현재 유통업체에 전달된 쌀이 계약분의 60% 수준인 18만톤에 머물고 있다. 쌀 운송이나 보관 창고, 자체 정미시설 등을 갖추지 못한 소매업체와 거래를 대폭 확대하면서 유통이 정체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농림수산성이 방출된 비축미를 8월 안에 판매하도록 요구한 건 또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유통 작업이 지연된 가운데 판매 기한이 다가오는 걸 부담스러워한 유통업체들이 계약을 취소한 물량만 4만톤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곧 본격적인 추수 기간이 되면 질 좋은 햅쌀 영향으로 쌀값이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정부는 브랜드쌀의 값이 고가로 유지되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며 “올해 거둔 쌀도 시중에 고가로 유통되는 게 예상된다”고 풀이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도 지난 20일 기자들과 만나 “앞으로 햅쌀이 들어오는 만큼 쌀값 동향 등을 지켜봐야 한다”며 “비축미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물론 쌀값 대응책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일단 아직 방출되지 못한 비축미 10만톤을 유통업체에 넘기는 데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또 정부가 해마다 20만톤 정도를 구매하던 비축용 쌀 확보를 미루고 시중에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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