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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연봉킹’ 여수산단 대공장들 가동 중단…“중국발 공급과잉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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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연봉킹’ 여수산단 대공장들 가동 중단…“중국발 공급과잉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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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4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의 야경. 공장들의 불빛은 화려하지만, 언제까지고 꺼지지 않을 수 있을까.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지난달 14일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의 야경. 공장들의 불빛은 화려하지만, 언제까지고 꺼지지 않을 수 있을까.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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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2시께 방문한 전남 여수시 국가산업단지(32㎢)는 매우 한산했다. 무엇보다 냉각탑(쿨링 타워)에서 수증기를 내뿜지 않아 깜짝 놀랐다. 대기업 3곳의 10개 공장이 가동을 임시 중단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지난해 엘지(LG)화학과 롯데케미칼에 이어 지난 8일 여천엔씨씨(NCC)가 3공장 가동을 임시 중단했다. 여수산단 내 한 직원은 “공장 설비 열을 식히는 쿨링 타워는 24시간 가동하는데, 공장을 최소한으로 돌리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3공장 가동을 중단한 여천엔씨씨는 여수산단에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다. 과거 1조원대 영업이익을 냈고, 5~6년 전까지만 해도 업계 ‘연봉 킹’이었다. 그런데 2022년부터 3년간 적자가 누적됐고, 최근 부도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전남도 쪽은 “여천엔씨씨가 언제 가동을 재개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1979년 가동을 시작한 여수산단이 국내 석유화학 제품 생산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는데, 지금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고 전했다.



지난 14일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 안 여천엔씨씨 3공장 앞은 임시 가동 중단으로 한산했다. 정대하 기자

지난 14일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 안 여천엔씨씨 3공장 앞은 임시 가동 중단으로 한산했다. 정대하 기자


중국발 공급과잉은 여수산단에 직격탄이 됐다. 한국은 2021년 기준으로 연간 127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해 규모로는 세계 4위 국가였다. 그런데 중국은 2021년 대규모 투자에 나서 에틸렌 생산능력이 2019년 2711만톤에서 2023년 5174만톤으로, 4년 만에 2배가 되었다. 최준열 여수상공회의소 사무국장은 “여수산단은 에틸렌 등 범용 제품 중심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 대산·울산 석유화학단지보다 더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지역”이라고 말했다.



에틸렌 등 범용 제품은 기술력이 차별화되지 않아 고부가가치 화학 제품과 달리 경쟁력이 떨어진다.



여수산단 불황은 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발주금액은 2022년 2조145억원에서 지난해 1조1195억원으로 44%나 줄었다. 대기업 발주금액이 줄면 협력업체 매출 감소와 노동자 계약해지(해고)로 이어진다. 여수산단 입주 업체는 316곳(대기업 25곳)이며, 여수산단 가동률은 2021년 96%에서 올해 1월 77.6%로 18.4%포인트 감소했다. 지난해 여수시 법인소득세는 67% 이상, 지방소득세도 49%가 감소했다. 정재경 여수시 화학소재산업팀장은 “여수산단 경기침체가 고용불안과 소상공인, 연관 기업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전남 여수시 무선지구 가게에 임대 광고판이 붙어 있다. 문을 닫은 가게 주인은 ‘개인 사정으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세워뒀다. 정대하 기자

지난 14일 전남 여수시 무선지구 가게에 임대 광고판이 붙어 있다. 문을 닫은 가게 주인은 ‘개인 사정으로 영업을 중단한다’는 안내문을 세워뒀다. 정대하 기자


일자리도 사라지고 있다. 여수산단 전체 고용은 지난해 1분기 2만5123명에서 2025년 1분기 2만4686명으로 크게 줄지 않았지만, 협력업체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플랜트 건설업 종사자는 지난해 9월 기준 8783명에서 올해 1월 기준 1780명으로 80%나 줄었다. 장창환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 사무국장은 “하청노동자가 해고 1순위다. 5~6개월간 집에 돈을 못 가져다준 조합원들이 갈치 배도 타고, 퀵서비스나 대리운전을 하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여수산단에서 가장 가까운 시가지인 화장동·선원동 일대 무선지구 식당가는 퇴근 무렵인데도 한산했다. 이날 저녁 6시50분 무선지구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조현진(21)씨는 “공단 경기가 죽어 회식도 줄었다. 식당 매출이 반토막이 났다”고 말했다. 이 식당 예약판엔 저녁 7시 한 팀만 이름이 올라 있었다. 무선지구 상가 건물 곳곳엔 ‘임대’ 광고판과 영업 종료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여수시의 지난해 3분기 기준 원도심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4%로 전국에 견줘 2배가 높다.



김성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이 지난 14일 노조 사무실에서 만나 대기업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김성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이 지난 14일 노조 사무실에서 만나 대기업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정대하 기자


구조조정과 산업구조 고도화가 대책으로 꼽힌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지난달 초 국회에서 열린 포럼에서 업계 공멸을 막으려면 7개인 여수산단 에틸렌 공장 중 2~3개를 정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여수시갑)이 대표 발의한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엔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을 위해 사업 재편 승인을 받은 경우엔 독점 규제에 예외를 두자는 규정 등이 담겨 있다. 주 의원은 “산업구조 고도화, 고부가가치화 및 환경친화적 구조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구조조정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성호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광주전남지부장은 “코로나19 때도 호황이었던 여수산단 대기업들이 에틸렌 등 범용 제품 위주로 ‘캐파’(덩치)만 키우다가 가격경쟁력을 잃었다”며 “비전을 제시하지 않고 회사가 어렵다며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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