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젤렌스키 정상회담에서 눈길 끈 장면들…
10번 넘게 "감사" 표시, '아내 편지'도 분위기 녹여
18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에 도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환영을 받고 있다./AFPBBNews=뉴스1 |
"정말 멋지군(I love it)."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 도착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젤렌스키는 이날 으레 입던 군복을 벗고 검은색 셔츠와 재킷을 차려입은 터다. 각 잡힌 양복은 아니었지만 트럼프는 젤렌스키의 어깨와 등을 연신 두드리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6개월 전 백악관에서 공개 언쟁 끝에 파국으로 끝난 회담과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준 장면이다.
이날 트럼프는 젤렌스키의 차림에 특히 만족한 듯 보였다. WSJ은 트럼프가 가볍게 던진 칭찬엔 진심이 가득했다고 짚었다. 트럼프는 내각 관료들이 "캐스팅된 배우들처럼 보인다"고 자랑할 정도로 외모와 이미지를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워싱턴 로이터=뉴스1) 권영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5년 2월 28일(아래)과 8월 18일, 두 차례에 걸쳐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회동하는 모습.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장을 입지 않은 2월28일 회담과 입은 8월18일 회담의 분위기 차이를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다. 2025.08.18. /로이터=뉴스1 |
젤렌스키는 2022년 러시아 침략이 시작된 뒤 전시 중임을 고려해 전투복 차림을 고수했다. 격식을 차리며 여유 부릴 때가 아님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2월 트럼프 집권 2기 공식 출범 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백악관 회담에서 젤렌스키의 옷차림은 역풍으로 작용했다. 우파 성향 기자 브라이언 글렌은 당시 젤렌스키에게 "왜 정장을 입지 않느냐"며 모욕적인 질문을 던졌고 동석했던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공감한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번엔 사뭇 다른 장면이 연출됐다. 이번에도 취재진에 있던 글렌 기자는 젤렌스키를 향해 "정장 차림이 멋지다"고 칭찬했고 트럼프는 "나도 같은 말을 했다"며 젤렌스키에게 "그가 지난번에 당신을 공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에 젤렌스키는 웃으면서 "기억한다"면서 "나는 바꿔입었는데 당신은 그대로"라고 한 방을 먹여 트럼프의 큰 웃음을 이끌어냈다.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 크로스 홀을 걸어가고 있다. 뒤에는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알렉산더르 스투브 핀란드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함께했다. 2025.08.19. |
또 "전쟁이 끝나면 정장을 입겠다"던 6개월 전 젤렌스키 답변에 비춰보면 이날 차림은 전쟁 종식을 위해 푸틴과 마주 앉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젤렌스키 재킷을 디자인한 빅토르 아니시모프는 "군인 이미지를 남겨두되 조금 더 일반인의 모습으로의 이미지를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젤렌스키는 이날 모두발언에서 미국에 연신 감사를 표하는 등 2월 파국이 재연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WSJ은 모두에서 젤렌스키가 "12번 넘게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2월 회담에서 밴스는 젤렌스키를 향해 미국에 충분히 감사하지 않는다고 공격한 바 있다.
젤렌스키는 아울러 미국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가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언급하며 세심하게 챙기는 모습이었다. 젤렌스키는 이날 자신의 아내가 쓴 편지를 트럼프에게 건네며 "당신의 아내에게 전달해달라"고 했고 트럼프는 "나도 받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18일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백악관 정상회담 직전 회담 장소인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우크라이나 지도.(BBC 방송 캡처) /사진=뉴스1 |
한편 이날 회담 장소인 대통령 집무실엔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지도'라는 이름으로 러시아가 점령 중인 지역을 표시한 우크라이나 지도가 설치됐다. 지도엔 러시아가 돈바스(루한스크와 도네츠크) 및 자포리자, 헤르손에서 러시아가 영토의 몇 %를 차지하고 있는지가 수치로 표시됐다. 트럼프는 이 지도를 젤렌스키에게 직접 보여줬는데 종전을 위해 영토 교환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젤렌스키는 "좋은 지도"라면서 "어떻게 되찾을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고 트럼프는 웃으며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란다"고 답했다.
이날 회담에서 젤렌스키는 영토 문제에서 타협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회담 후 "현재 전선을 고려해 영토 교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이 문제는 궁극적으로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이 푸틴 대통령과 합의하는 과정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훨씬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이번 회담에 유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젤렌스키의 동맹들은 백악관에서 공개 대립이 재연되면서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 적대적 태도를 보일까봐 우려했지만 기우로 끝났다"고 전했다. 이날 트럼프는 전후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방식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으나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아주 강력한 보호와 안전을 제공할 것"이라면서 "그들은 유럽에 있기 때문에 최전방 방어선이다. 하지만 우리가 도울 것이고 직접 관여할 것"이라며 지원 의지를 드러냈다.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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