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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미국 건국의 아버지에게 보낸 한 흑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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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미국 건국의 아버지에게 보낸 한 흑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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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 벤저민 배네커-1

미국 워싱턴 DC 스미소니언위원회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에 선 밴저민 배네커의 동상. wikimedia commons

미국 워싱턴 DC 스미소니언위원회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에 선 밴저민 배네커의 동상. wikimedia commons


1791년 8월 19일, 미국 메릴랜드 흑인 남성 밴저민 배네커(1731~1806)가 조지 워싱턴 초대 정부 국무장관 토머스 제퍼슨(1743~1826)에게 편지를 보냈다. 배네커는 “나와 같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을 고려할 때,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는 게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신들’이 선포한 독립선언문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흑인을 노예로 부리면서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이는 ’당신들’의 위선을 점잖게 꾸짖었다. 그는 “시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흑인에 대한) 어리석고 그릇된 생각과 선입견을 바로잡기 위한 모든 조치들을 기꺼이 수용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흑인(노예)이 가축처럼 부릴 수 있는 짐승이 아니며 동등한 조건에서 같은 교육을 받는다면 백인 못지않은 지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로, 자신이 쓴 1792년 연감 원고와 일식 등 천체 운행에 대한 천문학 계산 기록지를 첨부했다.

11일 뒤인 8월 30일, 제퍼슨이 “당신의 19일 편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정중한 답장을 보냈다. “자연이 우리 흑인 형제들에게 다른 인종과 동일한 재능을 부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귀하의 증거들을, 저보다 더 간절히 보고자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재능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그들이 아프리카와 미국에서 겪어온 열악한 환경 때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제퍼슨은 “그들의 신체와 정신의 상태를 마땅한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좋은 시스템이(…) 다른 상황들이 허용하는 한 가능한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는 바람과 함께 그의 원고를 프랑스 파리 과학아카데미 회장이자 박애협회 회원인 콩도르셰에게, 사전 허락도 구하지 않고 전달한 점을 양해해달라며 이렇게 썼다. “귀하의 전체 인종이 자신들에 대한 (세상의) 의심을 해소할 수 있는 문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계속)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