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제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전 세계 거의 모든 은행이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유럽에서 3곳의 주요 은행은 정부 지원 없이도 끄떡없이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을 유지했다. 그중 하나가 스웨덴의 '스벤스카 한델스방켄(Svenska Handelsbanken · 스웨덴 상업은행)'이다. 한델스방켄은 1990년대 초반 북유럽을 강타했던 은행 위기 때도 스웨덴에서 유일하게 파산하지 않았다.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 닐스 크로너 박사는 한델스방켄 사례를 중심으로 금융위기에도 무너지지 않은 은행들의 공통점을 분석했다. 그 결과를 <더 나은 뱅킹을 위한 청사진>(2011, 국내 미발간)에 담으며 '은행이 범하기 쉬운 7가지 대죄'를 제시했다. 이 내용은 에드워드 챈슬러가 엮은 <마라톤 투자자 서한>(2025, 부크온)에도 상세히 인용돼 있다.
닐스 크로너가 밝혀낸 위기를 유발하는 은행의 무분별한 7가지 행동 패턴과 한델스방켄의 모범적 운영 방식을 살펴보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전 세계 거의 모든 은행이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유럽에서 3곳의 주요 은행은 정부 지원 없이도 끄떡없이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을 유지했다. 그중 하나가 스웨덴의 '스벤스카 한델스방켄(Svenska Handelsbanken · 스웨덴 상업은행)'이다. 한델스방켄은 1990년대 초반 북유럽을 강타했던 은행 위기 때도 스웨덴에서 유일하게 파산하지 않았다.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 닐스 크로너 박사는 한델스방켄 사례를 중심으로 금융위기에도 무너지지 않은 은행들의 공통점을 분석했다. 그 결과를 <더 나은 뱅킹을 위한 청사진>(2011, 국내 미발간)에 담으며 '은행이 범하기 쉬운 7가지 대죄'를 제시했다. 이 내용은 에드워드 챈슬러가 엮은 <마라톤 투자자 서한>(2025, 부크온)에도 상세히 인용돼 있다.
닐스 크로너가 밝혀낸 위기를 유발하는 은행의 무분별한 7가지 행동 패턴과 한델스방켄의 모범적 운영 방식을 살펴보자.
"아무한테나 빌려주지 않는다"
제1 대죄: 신중하지 못하게 자산과 부채를 불일치시킨 죄
자금을 단기로 차입해 장기로 빌려주면 은행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례가 있다. 영국의 노던록 은행, 아일랜드의 은행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호황기 아일랜드 은행들은 만기 1년의 기업어음으로 조달한 자금(부채)을 계약만기 20년 이상의 가계모기지 대출(자산)로 제공했다.
반면 한델스방켄은 자산·부채 만기 불일치로 발생하는 리스크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인식한다. 한델스방켄은 본점의 중앙 재무기능을 이용하여 각 만기에 맞춰 예금과 대출을 일치시키고 그 가격을 책정한다. 이로 인해 지점들은 만기변환(단기 자금을 차입해 장기 대출로 운용하는 관행)으로는 이익을 보고할 수 없다.
제2 대죄: 고객의 자산·부채 불일치를 조성한 죄
대표적인 사례가 중유럽 국가들의 가계에 대한 외환 대출이다. 한때 유럽은행들은 헝가리와 라트비아 고객들에게 저금리의 유로화와 스위스프랑화 모기지 대출을 제공했다. 그런데 고객들은 그들이 떠안은 외환리스크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한델스방켄은 지점장들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가 채무 불이행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이기에 이런 대출은 하지 않는다. 지점장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바로 부실 대출을 늘리는 것이다. 한델스방켄은 내부적으로 이런 지표에 따라 지점들의 순위를 매김으로써 순위가 낮은 지점과 지점장들은 적극 독려한다.
제3 대죄: '갚을 수도 없고 갚지도 않을 차입자'에게 대출한 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서브프라임(비우량) 차입자와 사모펀드회사들에 대한 은행 대출이다. 이에 반해 한델스방켄의 접근법은 "돈이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중시장 접근법'이 아니라 '틈새대출시장 접근법'이다.
영국 런던 소재 투자사 '마라톤 에셋 매니지먼트'의 분석가들이 한델스방켄 경영진을 만났을 때 그들은 "지금 은행산업은 차입자들이 원금을 결코 상환하지 못할 신용리스크를 보지 못하고, 매 분기 불과 몇 베이시스포인트의 스프레드를 더 버는 데만 집착한다."고 개탄한 바 있다.
"잘 모르면 투자하지 않는다"
제4 대죄: 잘 모르는 영역에서 성장을 추구한 죄
과거 수많은 유럽은행이 신용상 전혀 리스크가 없는 AAA 등급이라고 소개한 '전문가'들의 말만 믿고는 미국 서브프라임 CDO(부채담보부증권)에 투자했다가 거금을 잃었다. 스위스 UBS는 400억달러를 날렸다. 요컨대 어리석게도 유럽 은행들은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결정을 외부인에게 '아웃소싱'했던 것이다.
한델스방켄은 해외 투자에 대해 항상 신중한 '유기적 점증주의(Organic Incrementalism)'를 고수했다. 위험한 발트 3국은 피하고, 그 대신에 영국 독일 노르웨이 등 성숙한 서유럽 시장에서 지점망을 확대했다.
제5 대죄: 부외대출을 제공한 죄
부외대출(off-balance sheet lending)이라는 은행의 대죄를 목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유럽은행들이 자산유동화중계회사(conduits·투자도관)와 구조화투자전문회사(SIVs)를 이용한 것이다. 자산유동화중계회사란 실질적인 소득이나 자산에 대한 지배 및 관리권 없이 조세회피 목적만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회사다.
하지만 한델스방켄은 만기까지 재무상태표에 계상해 놓을 준비가 된 리스크만 받아들이고,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하는 차입자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이런 원칙 덕분에 한델스방켄은 유럽은행 시스템 전반의 신용평가 기준에 큰 악영향을 끼친 '소포전달게임'식 증권화금융에는 발을 담그지 않았다.
제6 대죄: 선순환 및 악순환의 역학에 빨려든 죄
스칸디나비아 은행들이 발트 3국에서 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오랫동안 좋은 아이디어처럼 보였는데, 그것은 부분적으로 발트 3국의 GDP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발트 3국의 강한 경제성장은 스칸디나비아 은행들이 스스로 공급한 신용의 급증에 따른 것이었다. 아무튼 모든 은행이 같은 시장에서 대출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은행들에게는 안도감을 주었고, 한동안 선순환이 지속되었다.
이에 반해 한델스방켄은 반주류적 성향에 자부심이 있다. 지점망에 의존하는 구조를 가진 탓에 고위 경영진의 전략적 행보는 상대적으로 덜했다.
제7 대죄: '백미러'에 의존한 죄
빈약한 과거 경험만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백미러에 의존하는 운전과 같다. 특히 위험노출가치(Value-at-Risk)모형은 제한된 양의 과거 데이터에만 기초하는 경향이 있어 진정한 리스크가 과소평가될 수 있다. 메릴린치는 2007년 연차보고서에서 95% 신뢰구간과 1일의 보유기간에 기초하여 총 리스크노출이 1억5700만달러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1년후 메릴린치는 무려 300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한델스방켄은 스웨덴 은행 위기의 재발 같은 상대적으로 더 비관적인 위기 시나리오들에 기초하여 적정 자기자본비율을 결정했다.
"카펫이 돈 벌어주나요?" 구멍 난 카펫 그냥 쓰는 이유
1871년 설립된 한델스방켄은 현재 시가총액 기준 스웨덴 2위, 유럽 전체로는 25대 은행에 꼽힌다. 은행들은 대부분 중앙집중식 신용평가 체계를 이용한다. 하지만 한델스방켄은 분권형 사업모델을 운용중이다. 각 지점장이 현재 대면지식에 입각해 대출을 제공한다.
이 은행은 업계 최저 수준의 비용수익비율(Cost-to-Income Ratio)을 자랑한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마라톤 에셋 매니지먼트의 투자 전문가들이 한델스방켄 경영진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이렇게 질문했다. "귀 은행의 많은 지점 카펫에 구멍이 나 있다는데, 그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카펫은 돈을 벌어주지 않습니다"
이 은행 경영진의 인센티브는 특이하다. 은행측은 '옥토고넨(Oktogonen)재단'이라는 임직원 이익공유프로그램에 자금을 내고 있다. 이 재단은 한델스방켄의 ROE가 북유럽 및 영국은행들의 ROE 가중평균치를 상회하면 이익을 배분받는다. 통상 주주 배당금의 15%를 상한액으로 초과수익의 1/3이 배분될 수 있다.
모든 임직원은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동일한 금액을 나눠 받는다. CEO든, 경비원 출신이든 차이가 없다. 지급은 나이 60세가 되었을 때 한 번만 이뤄진다. 금액은 노벨상 상금의 절반 수준인 60만달러이다. 이 제도가 한델스방켄의 끈끈한 부족문화(tribal culture)에 기여하고 있으며, 임직원의 이해(利害)와 주주의 이해를 일치시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2025년 8월 현재 한델스방켄의 밸류에이션은 PER(주가수익비율) 14.88배, PBR(주식순자산비율) 1.29배로 높게 나타난다. 특히 ROE(자기자본이익률)는 13.6%나 된다. 대한민국 은행들의 평균 ROE(2024년 기준)는 7.80%로 그 절반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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