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우리의 굴곡진 역사는 ‘빛의 혁명’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빼앗긴 빛을 되찾고, 그 빛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3·1혁명의 위대한 정신이 임시정부로 이어지고, 한반도 삼천리 방방곡곡을 넘어, 온 세계에서 독립투쟁의 불길로 번지며 마침내 우리는 다시 빛을 찾았습니다.”
15일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12·3 내란사태를 극복한 ‘빛의 혁명’에 이르는 한반도 ‘주권 투쟁’의 역사를 191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언급하며 3·1운동을 ‘3·1혁명’으로 호명했다. 이 대통령이 ‘3·1혁명 정신’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현직 대통령으로서 공식 국가행사에서 이를 언급한 것은 또다른 문제다.
이 대통령은 왜 광복 80년 기념식에서 3·1운동을 3·1혁명으로 호명했을까.
헌법초안 전문에도 “3·1혁명 위대한 독립 계승”
3·1운동을 3·1혁명으로 부를 것인지는 ‘정명’, 즉 역사적 사건에 바른 이름을 붙여주는 문제로 역사학계의 오랜 화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에도 2019년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3·1혁명으로 부르자’고 제안을 했으나 흐지부지된 바 있다. 당시만이 아니다. 3·1운동의 ‘정명’은 제헌의 순간부터 끝없이 논쟁이 돼 왔다.
‘헌법의 순간’(페이퍼로드 펴냄)의 저자인 박혁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우리 헌법초안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3·1혁명의 위대한 독립을 계승하여”로 문을 열었다. 충칭 임시정부의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도 1943년 3·1절 기념사에서 “3·1대혁명은 한국 민족이 부흥과 재생을 위해 일으킨 운동이었다. 우리는 3.1절을 기념할 때 반드시 3·1대혁명의 정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3·1운동 택한 제헌국회 “혁명은 국내적 일”
그러나 제헌국회의 헌법기초위원회는 ‘혁명은 국내적 일이므로 조선이 일본에 항쟁한 것은 혁명이 아니다’라는 논리 등에 가로막혀 결국 헌법 전문에 3·1혁명 대신 3·1운동을 명시해 넣었다.
박혁 연구위원은 “3·1혁명은 단지 외세로부터의 독립만을 요구했던 사건이 아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 온 국민이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증명한 사건이다”라며 “이제라도 3·1혁명이 제 이름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2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어둡고 낡은 옛 집에서 뛰쳐나와 자유롭고 평등한 새 세상을 이루려고 싸우다 죽고, 다치고, 붙잡혔다”는 것이다.
3·1혁명으로 격상될까
학계에서는 여전히 이런 이유로 3·1운동을 혁명으로 부를 것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다만 3·1운동 100주년을 전후해 3·1운동을 단순히 독립운동이 아닌,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데에는 뜻이 모인 상태다. ‘국민주권정부’를 내세운 이 대통령 역시 이런 대목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임기 내 개헌’을 약속한 이 대통령이 개헌 과정에서 전문의 3·1운동을 3·1혁명으로 격상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역사적 사건을 재정의하는 과정에서 진영 간 소모적 논쟁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한 문제다.
대통령실 주요 관계자는 “이번 경축사 속 3·1혁명이라는 표현은 선언적 측면에서 이해해달라. 다만 사회적으로 다시 한 번 논의를 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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