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N 사무총장 “이제는 핵무기 없애야 한다”
멜리사 파크(Melissa Parke)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부산 동구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지 80년이 지났다. 이제는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
멜리사 파크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ICAN) 사무총장은 희망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는 인류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봤다. 이대로 군비 확장과 핵무기 확산의 길을 걸을 것인지, 대화와 협력의 길을 갈 것인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크 사무총장은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핵무기와 핵실험으로 인한 피해 생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피해를 초래하는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해야 ‘진정한 안보’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광복 8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파크 사무총장을 부산에서 만났다. 2017년 핵무기금지조약(TPNW)이 체결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국제 군축단체인 ICAN을 이끄는 그는 “핵무기 위협을 크게 느끼는 한국, 일본과 같은 나라부터 핵무기 확산 경쟁에 가담할 게 아니라 핵무기 폐기를 위한 길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 체결되고, 2021년에 발효돼 ‘모든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보유·사용·사용위협’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TPNW에는 세계 140여개국의 지지가 있었다. 다만 미국·러시아 등 핵보유국과 한국·일본 등 미국의 동맹국은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파크 사무총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중국, 러시와와 비핵화 논의를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며 “미국과 러시아가 핵무기 폐기를 향해 움직인다면 국제 사회 다수가 이미 동의한 조약인 TPNW에 다른 핵보유국도 합류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파크 사무총장은 ‘생존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지난 7월14일 열린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크 사무총장은 이 발언에 대해 “매우 무책임한 발언이고 인류 전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이라며 “한국의 진정한 안보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지구적으로 핵무기를 폐기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핵무기 피해를 이미 겪은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2026년 미국 뉴욕에서는 한국 평화단체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의 주도로 ‘원폭 국제 민중 법정’이 열린다. 생존자인 한국 핵무기 피해자를 청구인으로 미국의 핵무기 투하가 국제법에 위배되는 불법 행위임을 확인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1945년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생긴 한국인 피해자는 7만명으로, 이 중 생존자는 약 3만명에 불과했다. 현재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1세대 생존 피해자는 지난해 11월 기준 1650명이다. 파크 사무총장은 “미국은 마셜 제도 핵실험, 일본 원폭 투하 등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며 “한국 원폭 피해자들이 겪어온 인도적 문제를 국제 사회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크 사무총장은 “세계적으로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에 한국이 가장 안전해질 길은 세계 대부분 국가와 함께 핵무기를 거부하는 TPNW에 합류하는 길”이라며 “한국이 인류와 지구를 보호하는 주도적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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