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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살인·강간 군·경 무더기 사면···“나라 위해 일한 분들인데” 가해자 편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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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살인·강간 군·경 무더기 사면···“나라 위해 일한 분들인데” 가해자 편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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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시민들이 13일(현지시간) 리마 정의의 궁전(대법원) 앞에서 군·경 사면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페루 시민들이 13일(현지시간) 리마 정의의 궁전(대법원) 앞에서 군·경 사면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페루 정부가 내전 당시 반군과 민간인을 상대로 살인과 성폭행을 자행한 전직 군·경을 사면해 시민사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다.

페루 대통령실은 13일(현지시간) 엑스에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과거 ‘테러와의 전쟁’에 앞장선 군인, 경찰관, 자위대원을 사면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오늘은 우리 나라에 역사적인 날이다. 테러리즘에 맞선 이들에게 정의와 명예를 안겨주는 날”이라며 과거 나라를 지킨 사람들이 부당한 비난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이번 사면은 의회 승인에 따른 조치다. 의회는 지난 6월 ‘1980~2000년 내전 관련 군·경 구성원 대상 사면법안’을 상정해 지난달 통과시켰다.

페루에서는 1980년부터 2000년까지 극좌 무장단체 ‘빛나는 길’과 정부 간 내전이 벌어졌다.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의 마오사상을 이념적 기반으로 삼았던 빛나는 길은 농촌을 중심으로 무장봉기를 주도했다. 약 20년에 걸친 내전 중 민간인 포함 6만928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페루 진실화해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일부 군·경은 반대 세력을 진압하겠다는 명목으로 빛나는 길 단원에게 식량을 제공한 민간인을 살해했다.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행도 자행했다. 진실화해위는 보고서에서 최소 24명의 성폭행 피해자를 확인했으며 실제 피해자는 최소 53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2000년대 들어 민간인 피해 사실이 진실화해위와 수사기관에 의해 공식 확인되자 페루 재판부는 이 사안과 관련한 150건의 사건 피고인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관련 재판은 600건 이상이다. 이번 사면으로 피고인과 기결수들은 공소권 소멸이나 형 집행 면제 등 구제 조처를 받게 된다.

페루가 학살을 저지른 이들을 사면하자 인권단체는 강력히 반발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아니타 괴베르투스 미주 국장은 이날 “이 법은 학살 피해자를 완전히 배신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서 사면법안이 상정됐을 당시 미주기구 산하기관인 미주인권위원회도 “사면권은 비폭력 범죄나 가벼운 범죄에만 적용돼야 한다. 페루의 사례는 피해자의 정당한 사법적 접근권을 매우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2021년 좌파 정당 페루리브레 소속으로 부통령에 출마해 당선된 후 “당의 이념을 수용한 적 없다”고 발언했다가 제명당했다. 이후 보수 정치세력과 협력했다. 그는 페드로 카스티요 전임 대통령이 직권남용 등 이유로 탄핵당하면서 헌법에 따라 2022년 12월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지시해 수십 명을 사망하게 한 혐의와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수사받고 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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