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은 국제무역기구(ITO) 출범 전까지 임시협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 의회가 정책 자율성 침해를 우려해 ITO 비준을 거부하면서 계획이 무산되자 GATT는 국제무역 질서를 이끄는 사실상의 국제기구로 자리잡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유럽 경제통합의 심화, 개발도상국의 특혜요구 증가, 중동위기에 따른 석유파동 등으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면서 GATT 체제가 크게 흔들렸다. 이에 미국은 케네디라운드(1964~67년)와 도쿄라운드(1973~79년)로 위기를 돌파했다. 대규모 관세인하와 개도국에 대한 특별한 대우 약속은 물론 보조금·반덤핑·기술무역장벽 등 비관세 장벽 억제를 위한 복수국간 규약도 채택됐다.
1980년대 역시 지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했지만 미국의 주도와 GATT의 제도적 탄력성은 우루과이라운드(1986~93년) 타결로 이어졌다. 그 결과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역사적인 출범을 했다. 하지만 30년을 맞은 WTO 시대도 순탄치 않았다. 2001년 시작된 도하라운드는 2015년 이후 사실상 중단됐다.
WTO 개혁의 최대 난관은 중국이다. 2001년 WTO에 가입한 중국은 그간 국제무역 확대에 크게 기여했지만 시장경제를 전제로 한 전후 무역질서의 허점을 이용해 국영·준국영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과잉생산과 약탈적 덤핑을 사실상 방치했다. 이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국의 회색지대 조치뿐만 아니라 애초 GATT가 비시장경제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제어할 장치를 갖추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지금까지 GATT의 규범적 공백은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교역국간 타협으로 메웠다. 그러나 오늘날 비시장경제국이 일으키는 시장교란을 억제하려면 중국의 협조가 필수다. 문제는 중국이 이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뿐 아니라 WTO 개혁논의에도 비협조적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중국을 WTO에서 강제로 퇴출할 방법도 없다.
이런 배경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돌연 'WTO 시대의 종언'을 선언했다. 그 이유로 WTO가 미국의 산업기반을 약화하고 비효율적인 분쟁해결 절차를 방치해 중국이 느슨한 무역규범을 악용토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든다. 대안으로 미국 시장개방을 교역 상대국의 관세·비관세장벽 철폐와 직접 연계하는, 이른바 '턴베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이는 상대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즉각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상은 미국이 WTO를 완전히 버리겠다는 의도라기보다 중국을 자유주의 무역질서에서 배제하겠다는 위협으로 개혁협상에 끌어들이려는 압박카드로 보인다. 다만 이런 단기적 조치는 중국의 반발을 부추기고 무역질서의 분절화를 가속할 위험이 있다. WTO 밖에서 이뤄지는 이런 시도가 과연 미국이나 다른 시장경제국의 장기이익에 부합할지도 미지수다.
지난 80년 가까이 GATT와 WTO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놀라운 회복 탄력성을 보였다. 이제 미국이 종언을 선언한 마당에도 그 제도적 힘이 유효한지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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