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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중대재해, 칼춤으론 끊지 못한다

이데일리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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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중대재해, 칼춤으론 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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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기고
형벌·과태료 등 과도하지만 중대재해 반복 막지 못해
비현실적 안전기준 등 개선…예방 시스템부터 선진화해야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 최근 잇따른 중대재해로 우리나라 기업의 안전역량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건설업 중대재해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줄지 않고 있다. 이에 새 정부는 대통령을 필두로 중대재해를 근절하겠다며 연일 강경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다만 이런 입장이 재해에 대한 과학적인 현실 진단과 유리된 채 감정적 대응에 치우쳐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나라 산업안전 제재가 이미 형벌, 과태료, 행정제재 등 여려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현실 인식은 잘못된 처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 원인에 대한 차분한 진단과 예방 시스템 개선 논의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느 나라에도 없는 희한한 과잉 제재가 불쑥 규정될 것 같다.

새 정부는 제재를 강화하면 중대재해를 쾌도난마 식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과연 강한 제재만으로 산업안전이 선진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면 권위주의 국가들은 이미 산업안전 선진국이 돼 있어야 한다. 산업안전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엄벌이 아니라 예방시스템 선진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법의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예방 정책의 핵심 과제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법은 장식용에 불과하고 제재를 강화한들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점은 이론적·경험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라는 셈이어서 무책임하기도 하다.

원청과 하청 간 역할과 책임이 뒤섞여 있는 규정부터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현재는 원청과 하청 중 누가 해야 하는지, 원청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무부처도 답변하지 못하고 전문가마다 판단이 제각각이다. 심지어는 원청이 하청과 같은 의무를 부담한다는 위헌적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법 간에 충돌하는 부분마저 있다.

비현실적인 안전기준이 넘쳐나는 것도 재해 예방에 큰 걸림돌이다. 준법 의지가 강한 기업조차 지킬 수 없는 규정이 수두룩하다. 예컨대 형광등 교체 작업에 대해서까지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하고 테스트하기 위해선 기계를 작동할 수밖에 없는 데도 정지시키지 않았다고 처벌한다.


모호하고 조잡한 기준은 행정기관의 자의적 법집행을 조장하고 있다. 적발 자체를 사실상 목적으로 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별감독을 받은 기업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중대재해가 재발하는 주된 이유다. 법을 빙자한 인치(人治)는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형식적 안전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정부는 이런 본질적이고 심각한 문제에 대해선 눈감고 손대려 하지 않는다.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행정조직 확대와 제재 강화에 의존하는 탓에 ‘고비용 저효과’ 산업안전이 고착화하고 있다. 심각한 점은 산업안전 행정인력이 근로자 수 대비 산업안전 선진국보다 훨씬 많은 데도 제재 강화 수단으로 감독 인력을 대폭 늘리겠다는 것이다. 고비용 저효과 문제가 악화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안전에 대한 전문성과 진정성이 없는 정부일수록 보여주기 식의 제재를 능사로 생각하기 쉽다. 새 정부는 벌써 그런 조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군기 잡기 식의 정책만으론 중대재해를 줄이기 어렵다. 되레 현장의 안전이 뒤틀려질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선 실질, 자율, 헌신이 사라지고 겉치레, 타율, 냉소가 판치고 있다.

최선의 형사정책은 사회정책인 것처럼 안전에서 최선의 형사정책은 예방정책이다. 예방 시스템을 실효성 있게 정비하는 일에 주력해야 하는 이유다. 중대재해의 구조적 원인에 해당하는 법의 예측과 이행 가능성 결여 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복잡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정부의 존재 이유를 몰각하는 것이자 재해자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