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세포 밖에 엉켜 있는 아밀로이드에 리튬이온(노란색)이 포획돼 주변의 농도가 낮다(왼쪽). 이때 오로트산리튬(lithium orotate. 빨간색)을 투여하면 리튬 수치가 올라가며 미세아교세포(microglia)의 아밀로이드를 분해하는 작용이 재개되고 증상이 개선된다. 네이처 제공 |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이 글의 제목을 보고 ‘리튬도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인가?’라고 짐작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배터리가 있는 제품이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리튬이 아니라 리튬 ‘결핍’이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킨다는 최신 연구 결과다. 그런데 리튬이 우리 몸에 필요한 원소인가?
지구에 존재하는 92가지 원소(수소에서 우라늄까지) 가운데 인체에서 발견되는 원소는 60가지 내외이지만 뭔가 역할이 있어 꼭 필요한 원소는 28가지다. 나머지는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때 들어온 불순물이다.
소금의 불순물로 주로 섭취하는 리튬은 과거 생리적인 역할이 없는 원소로 여겨졌지만, 결핍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필요한 원소 28가지에 포함됐다. 다만 리튬을 비롯해 미량으로 존재하는 필수 원소 몇 가지의 생리 기능은 여전히 불명확하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 사이트에는 알츠하이머병 환자 뇌의 리튬 수치가 낮고 이런 현상이 발병과 관련됨을 입증한 연구 결과가 실렸다. 하버드의대가 주축이 된 미국 공동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전조 증상인 경증인지장애가 있는 노인과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와 혈액에 있는 미량 금속 27종의 농도를 분석해 리튬만이 유의미하게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세히 들여다본 결과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단백질 덩어리에 리튬이온(Li+)이 포획돼 있었고 그 결과 주변의 농도가 낮아진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증상이 있는 생쥐를 대상으로 리튬을 보충한 실험을 한 결과 증상이 완화되거나 회복됐는데, 리튬을 어떤 형태로 투여했느냐에 따라 차이가 컸다. 리튬 금속은 물에 닿으면 폭발하므로 이온의 염 형태로 만드는데, 실험한 16가지 염 가운데 오로트산리튬이 가장 효과가 좋았고 부작용도 없었다. 오로트산리튬은 다른 염에 비해 아밀로이드에 쉽게 포획되지 않았다.
현재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를 없애 진행 속도를 늦추는 항체 치료제 2종이 있지만 비싼데다 효과 대비 부작용이 크다. 연구자들은 경증인지장애가 있는 노인과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오로트산리튬 임상시험을 제안했다. 수돗물의 리튬 수치와 알츠하이머병 발병률이 반비례한다는 역학조사 결과도 있어 리튬 보충제가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리튬은 양극성장애(조울증) 치료제로 1970년 이후 쓰이고 있다(탄산리튬 형태로). 조증인 상태에서 리튬을 복용하면 기분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뛰어나다. 뜻밖에도 리튬이 어떻게 양극성장애 환자의 기분을 안정시키는지는 여전히 모른다(우연히 이런 효과를 발견했다). 만일 작용 메커니즘을 밝혔다면 이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앓아온 심리학자이자 저술가인 로런 슬레이터는 저서 ‘블루 드림스’(우울한 꿈)에서 이렇게 썼다. 과학도 이렇다니 참 씁쓸한 현실이다.
“리튬은 정신의학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신경과학자들의 관심을 끈 적은 없었어요. (자연에 존재하므로) 수익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되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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