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고위공직자 특강에서 발언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연설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워싱턴/AP 연합뉴스 |
오는 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동맹 간 단순 친교의 장을 넘어 ‘트럼프발’ 관세·안보 압박의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시험대 성격이 짙다. 이 대통령이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대통령 개인의 지지도는 물론 국가의 중장기적 안정·발전이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최우선 과제는 지난달 말 한-미 관세협상 합의 중 해석이 엇갈리는 대목의 디테일을 풀어내는 것이다. 양국은 상호관세 협상을 통해 합의의 뼈대를 세웠지만, 쌀·소고기 같은 세부 항목이나 투자금액 사용 권한 등에 대해서는 서로 주장하는 내용이 다르다. 예컨대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국은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자동차와 쌀과 같은 미국 제품에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말했지만, 다음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개방 폭이 더 늘어나는 것은 없다”며 부인한 바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세협상에서 합의된 대미 투자펀드 외에 민간기업의 기존 투자계획과 신규 투자계획 등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2주 내 백악관을 방문해 양자 회담을 할 때 추가 투자금액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무협상에서 관련 내용이 거의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지만,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쪽에 유리한 내용으로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안보 관련 현안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풀어야 할 핵심 협상 의제다. 미국 쪽 외교·국방 인사들은 최근 들어 잇따라 주한미군 감축이나 전략적 유연성 등 민감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8일 경기 평택에서 한국 기자를 상대로 한 간담회를 열어 “우리(주한미군)의 이동을 막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또 워싱턴포스트(WP)는 9일 보도를 통해 ‘미국 정부가 관세협상 문서 초안에서 한국에 대해 중국을 더 잘 억제할 수 있도록 주한미군 태세의 유연성을 지지하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다.
김성배 인하대 특임교수(전 국정원 해외정보국장)는 “미국은 공동선언문에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여섯 글자를 넣으려고 할 것이고, 우리는 빼고 싶어 할 것”이라며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내용이 있는 2006년 한-미 외교장관 공동성명을 대체할 수 있는 상위 문서가 나올 수 있느냐가 이번 회담의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당시 한-미 외교장관은 한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하고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 입장을 존중’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주한미군 방위비의 경우 별도 협상 창구가 있는 만큼 이번 회담에서 논의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반면, 국방비의 경우 백악관을 비롯한 미국 쪽의 여러 경로를 통해 인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나온 만큼, 회담 의제가 될 확률이 높다. 9일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이 국방비를 국내총생산의 2.6%에서 3.8%로 올릴 것을 바라고 있다. 외교부 전직 고위당국자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국방비 협상을 참고해, 국방비가 인상되더라도 일부를 국방 관련 간접비용으로 돌리는 등의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이버 보안과 민방위 예산 등 정부 각 부처에서 개별 집행하는 예산을 국방 관련 간접비용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협상 결과를 공동선언문 등 문서로 명시해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 내용을 왜곡 해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일본은 지난달 23일 트럼프 대통령과 상호관세를 15%로 하기로 합의했으나, 이는 기존 관세에 15%씩 더해지는 관세라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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