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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내고 일하는 척… 청년들, '가짜 직장'서 품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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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돈 내고 일하는 척… 청년들, '가짜 직장'서 품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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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증시, AI주 호조에 일제 상승 마감…S&P 0.64%↑
中 청년 실업률 14.5%… 집 대신 돈 내고 사무실로
상하이·난징·우한 등 '가짜 직장', 금세 만석돼 열풍
전문가 “경제전환, 노동시장 불일치서 비롯된 현상”


'일하는 척하기' 사무실에 모인 사람들은 앉아서 시간을 보내거나 채용 지원을 한다. 사진은 한국일보 인공지능 HAI가 그린 가상 이미지. 그래픽=달리3∙곽주은 인턴 기자

'일하는 척하기' 사무실에 모인 사람들은 앉아서 시간을 보내거나 채용 지원을 한다. 사진은 한국일보 인공지능 HAI가 그린 가상 이미지. 그래픽=달리3∙곽주은 인턴 기자


중국 청년 실업자 사이에서 돈을 내고 일하는 척하는 이른바 '가짜 직장'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BBC는 이런 가짜 직장은 선전 상하이 난징 우한 청두 쿤밍 등 중국 주요 도시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12일 보도했다. 이들 사무실은 컴퓨터 회의실 인터넷 탕비실까지 갖춰 겉보기엔 실제 직장과 다를 바 없다. 하루 30~50위안이면 이용 가능하고 점심과 간식·음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수이 저우(30)는 올해 4월부터 광둥성 둥관시에 있는 ‘프리텐드 투 워크(Pretend to Work·일하는 척하기)’ 사무실로 출근한다. 하루에 30위안(약 5,800원)을 내고 아침 8~9시에 출근해 늦게는 밤 11시까지 머문다.

지난해 요식업 사업에 실패한 그는 우연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짜 직장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 사무실에는 다섯 명의 ‘동료’가 더 있다. 이들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걸 넘어 구인 공고를 찾거나 창업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저우도 이곳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을 공부하면서 AI 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체 취직에 도전하고 있다. 저우는 “매우 행복하다. 다 같이 팀으로 일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청년실업 급증이 원인... 中 주요 도시에 잇따라 등장


둥관시에서 가짜 직장을 운영하는 A(30)씨는 “내가 파는 건 단순 작업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게 하는 품위”라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다가 코로나19로 가게 문을 닫으면서 무력함을 겪었던 그는 지난 4월 사무실을 차렸고 한 달 만에 모든 자리가 꽉 찼다고 밝혔다.

'가짜 직장인'이 늘어나는 이유는 중국 경제 및 고용시장 침체와 관련이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6월 청년 실업률은 14.5%에 달한다. A씨가 운영하는 시설은 이용자의 40%가량이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로, 상당수는 부모나 학교에 인턴 증빙 사진을 보내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전자상거래 종사자, 온라인 작가 등 프리랜서로, 전체 이용자의 평균 연령은 30세다.


상하이에 사는 탕샤오원(23)도 올해 초 가짜 사무실 한 달 이용권을 결제했다. 대학 학위증을 받으려면 취업을 하거나 인턴 경력을 증빙해야 하지만 막상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한 그는 가짜 직장에서 찍은 사진을 제출하는 속임수를 썼다. “어차피 속일 거면 제대로 속여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가짜 사무실에서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사복을 입은 중국인 유학생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졸업을 자축하고 있다. 신화 캡처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학사복을 입은 중국인 유학생이 오성홍기를 흔들며 졸업을 자축하고 있다. 신화 캡처


단순 장난 아냐... "청년들의 숨 쉴 공간"


전문가들은 가짜 직장을 중국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장난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한다. 크리스천 야오 뉴질랜드 빅토리아대 교수는 “경제 전환기와 교육·노동시장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현상”이라며 “청년들이 본격적으로 취업하기에 앞서 진로를 고민하거나 머물 수 있는 ‘전환기 공간’으로 기능한다”고 분석했다. 비아오 샹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연구소장도 “청년들이 주류 사회와 거리를 두며 숨 쉴 틈을 찾는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가짜 사장님' A씨는 이렇게 말한다. “겉으로는 거짓으로 체면을 유지하지만 일부는 이곳에서 새로운 출발점을 찾는다. 단순히 연기를 돕는다면 기만이지만 진짜 시작이 된다면 의미가 있다.”

곽주은 인턴 기자 jueun1229@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