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30년간 재즈의 시간 담아온 말로…“고 김민기 송북 내고파”

한겨레
원문보기

30년간 재즈의 시간 담아온 말로…“고 김민기 송북 내고파”

속보
민간상업발사체 '한빛-나노' 실패한듯…폭파 장면 포착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지난해 5월 전북 군산의 재즈클럽 ‘머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JNH 뮤직 제공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지난해 5월 전북 군산의 재즈클럽 ‘머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JNH 뮤직 제공


“완전한 순간이란, 내가 가진 모든 숨과 마음과 소리를 하나의 시간에 쏟아붓는 거예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을 위해, 매번 무대에 오르죠.”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목소리는 여전히 뜨겁고 단단했다.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은상 수상 이후 32년간 노래해온 그는 최근 첫 라이브 앨범 ‘말로 라이브 앳 머디’를 발표했다. 전북 군산의 작은 재즈클럽 ‘머디’에서 지난해 5월 녹음한 공연 실황이다. 기존 스튜디오 앨범에는 채 담지 못했던 날것 그대로의 에너지, 자유로움과 즉흥의 쾌감이 음반을 가득 메운다.



“스튜디오 앨범의 정갈함도 좋지만, 제 음악의 심장은 무대에 있어요. 관객과 함께 숨 쉬는 그 공기를 남기고 싶었죠.” 앨범은 스윙, 라틴, 블루스, 발라드 등 장르를 넘나들며 클럽 무대에서 수십년간 벼려온 13곡을 두장의 시디(CD)에 펼쳐놓았다. 러닝타임이 1시간29분에 달한다. 요즘은 드문 ‘대작’이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지난해 5월 전북 군산의 재즈클럽 ‘머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JNH 뮤직 제공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지난해 5월 전북 군산의 재즈클럽 ‘머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JNH 뮤직 제공


보사노바의 서정을 빠른 라틴 리듬으로 변주한 ‘블랙 오르페우스’, 고전 블루스를 말로만의 호흡으로 다시 빚은 ‘윌로우 윕 포 미’, 베이스와 보컬이 긴장 속에서 기댄 ‘메모리아 에 파두’ 등 각 곡은 무대에서만 가능한 순간과 해석을 품고 있다. 앙코르 곡으로 담긴 ‘벚꽃 지다’는 그를 대표하는 창작곡으로, 무욕의 담백함이 깃든 버전으로 새겨졌다.



그래미 2회 수상자인 엔지니어 황병준과 시인과 촌장, 루시드폴 앨범 작업을 한 윤정오 등 ‘음향 드림팀’이 소리를 세심하게 어루만졌다. 무대와 객석이 맞닿은 작은 클럽의 공간적 한계를 극복해, 국외 재즈 명반과 견줘도 손색없는 사운드를 구현했다. 돌비애트모스 음원도 공개했고, 내달 말에는 엘피(LP)로도 발매한다.



10년 이상 호흡을 맞춘 이명건(피아노), 황이현(기타), 정영준(베이스), 이도헌(드럼)이 함께했다.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음악 동지들이다. 스튜디오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현장만의 ‘번뜩임’이 곳곳에서 폭발한다. ‘어 타임 투 러브, 어 타임 투 크라이’에는 공연 중 피아노 현이 끊어지는 해프닝까지 그대로 담겼다. “이 앨범의 주인공은 시간”이라고 말로는 말했다. “다시 오지 않을 그날의 공기와 호흡이 온전히 담겼어요. 제 것이면서 관객들 것이기도 하죠.”



말로의 첫 라이브 앨범 ‘말로 라이브 앳 머디’ 앨범 표지. JNH 뮤직 제공

말로의 첫 라이브 앨범 ‘말로 라이브 앳 머디’ 앨범 표지. JNH 뮤직 제공


노래한 지는 32년이지만, 본격적으로 재즈를 한 지는 올해로 꼭 30년이다. 말로는 “30년 동안 재즈만 하며 살아왔다는 건, 저 혼자 이룬 게 아니다. 저를 믿고 들어준 관객, 함께한 연주자들, 그리고 지지해준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재즈로만 생계를 잇는 건 쉽지 않다. 그는 “온실 속 화초 같은 행운”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 속엔 무대와 삶을 오가며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온 치열함이 숨어있다. “매 순간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부족함마저도 저만의 결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오늘도 좋았다’는 감각이 자주 들어요.”



말로는 요즘 후배들의 기술적 완성도에 감탄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요즘 친구들은 테크닉이 정말 좋아요. 그런데 가끔, 노래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재즈는 틀을 벗어나서 부서지는 순간, 비로소 살아 숨 쉬거든요.” 그는 “보컬은 말하는 악기”라며 “악보만 보고 부르면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 눈을 들어 사람을 보고 악기들을 바라봐야 한다. 그 기운 속에서 진짜 음악이 나온다”고 조언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지난해 5월 전북 군산의 재즈클럽 ‘머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JNH 뮤직 제공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가 지난해 5월 전북 군산의 재즈클럽 ‘머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JNH 뮤직 제공


그의 음악 철학은 오랜 시간 몸담아온 한국의 원조 재즈클럽 ‘야누스’ 운영에도 이어진다. 그가 맡아왔던 서울 압구정동 야누스는 이달 말 광화문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말로는 이곳에서 공동 운영자이자 공연자로서 다시 클럽을 일으킬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누구나 무대에 설 수 있는 ‘잼 데이’를 구상 중이다. “노래 하나만 연습해 오면 누구든 무대에 설 수 있어요. 그게 재즈의 본질이기도 하고, 재즈 대중화의 시작이라고 믿어요.”



말로는 앨범 발매를 기념해 내달 27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 ‘퍼펙트 모먼트’를 연다. 2016년 ‘노바디 노즈’ 이후 9년 만의 단독 공연이다. 그는 “재즈는 계획되지 않은 길을 걷다가, 예상치 못한 충만함을 만날 때 완전한 순간이 된다”며 “이번 공연이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훗날의 프로젝트로 고 김민기의 송북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도 밝혔다. 말로는 지난달 18일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1주기 추모 행사 ‘김민기 뒤풀이’ 무대에 섰다. “김민기 선생님의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에 시대와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려 했는데, 그 무대에선 저도 모르게 진심이 터져 나왔어요. 무거운 무언가가 어깨 위에 내려앉는 느낌이었죠.”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JNH 뮤직 제공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JNH 뮤직 제공


그때의 경험은 또 하나의 숙제를 남겼다. “김민기 송북이든, 또 다른 창작이든, 더 오래 노래하려면 더 많이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군가 듣고 이어받을 수 있도록요.”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